▲ 내년 2월16일까지 열리는 인천시립박물관 특별전 '노동자의 삶, 굴뚝에서 핀 잿빛 꽃'


'노동'이란 단어는 한동안 금기어였다. '노동당' '노동적위대' 등 북한에서 상용어로 쓰는 것에 대한 일종의 알레르기 때문이었으리라. 남쪽에서는 오랫동안 '근로'라는 단어로 대체돼 사용했다. 나는 그 금기어 '노동'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며 자랐다. 동네 가까운 곳에 '노동회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송림동 제삼교회 바로 앞에 노동회관이 있었다. 1960년경에 보건사회부는 항만노동자들이 많이 집결해 있는 인천, 부산, 군산에 복지시설인 노동회관을 신축했다. 인천의 노동회관은 당초 옛 현대극장 자리에 세우려고 했으나 땅을 파고 보니 개펄이 나와 포기했다. 인근 제삼교회 바로 앞에 3층짜리 건물을 지었다. 목욕탕, 이발소, 미용실, 예식장, 식당 등이 들어섰다. 그중 지역민에게 인기 있었던 시설은 단연 목욕탕과 이발소였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 고개 넘어 노동회관 목욕탕에 자주 간 편이었다. 목욕비가 시중 목욕탕의 반값도 안됐던 것으로 기억한다. "뇌동회관에 가서 목간하고 와라" 모친은 노동회관을 '뇌동회관'이라고 발음하셨다. 그 목욕탕은 늘 만원이었다. 날품 파는 노동자든 구멍가게 운영하는 자본가든 그 탕 속에서는 같은 벌거숭일 뿐이었다. 가끔 주인이 들어와 잠자리 채 같은 뜰채로 둥둥 떠다니는 시커먼 때를 걷어냈던 장면이 떠오른다.

인천시립박물관에서는 현재 특별기획전 '노동자의 삶, 굴뚝에서 핀 잿빛 꽃'이 열리고 있다. 그동안 박물관에서도 알게 모르게 '노동'은 금기어였다. 흥행하기 어려운 주제였다. 대한민국 산업화 용광로의 불씨를 지폈던 인천에서는 이제 '노동'은 일상의 목욕처럼 학술, 문화, 역사, 축제 등에서 다양하고 편하게 표출해야 할 소재가 되었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