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해 한용운 지음, 어의운하, 336쪽, 1만5000원

이 책은 잡지 <불교> 1940년 2월호와 4월호에 실린 실우(失牛·만해의 필명)의 '유마힐소설경강의'와 400자 원고지 총 148장 분량의 육필 원고를 모아 발간한 <한용운전집> 제3권에 실린 <유마힐소설경>을 저본으로 했다.

만해는 1933년부터 <유마힐소설경> 번역을 시작했고, 1940년에 <불교>지에 첫 연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2월호, 3~4월호(합본호)에 2회를 연재하다 중단된다. 만해가 생애 첫 완역을 시도한 경전이 왜 <유마경>이었는지, 또 왜 번역이 중단됐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에 실린 번역본은 <불교>지에 연재된 내용과 <한용운전집>에 실린 내용을 합한 것이다.

만해의 행적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선방에만 앉아 있지 않고 불교개혁, 나라의 독립, 사회정의를 위해 일평생 실천 현장에 있었다는 점이다. 조용한 숲 속에 앉아 있는 가섭을 향해 호통 친 유마거사처럼 만해 역시 선외선(禪外禪), 즉 '선 밖의 선'을 추구하며 활선(活禪)의 길을 지향했고, "중생이 아프면 보살이 아프다"는 유마거사의 가르침대로 고통받는 중생들과 삶을 함께했다. 따라서 만해는 승려였지만 출세간에 안주하지 않았으며, 수행자였지만 선방에 안주하지 않는 생활선의 길을 지향했다.

그런 만해에게 <유마경>은 그의 삶을 대변하고, 실천적 삶에 대한 당위를 뒷받침하는 교학이자 성전이 아닐 수 없었다. 실제로 그는 유마의 정신으로 살았으며, 출가자라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중생의 삶 속에서 유마로 살았다.

<유마경>은 <승만경>과 더불어 대표적인 대승경전으로 평가받는다. 대부분의 대승경전이 석가모니불이나 비로자나불 등 부처님이 설법의 주체로 등장한다. 하지만 <승만경>과 <유마경>은 승만부인과 유마거사라는 재가자가 설법의 주체로 등장한다. 단지 설법의 주체가 재가자라는 점에 그치지 않고 부처님의 대제자들은 유마거사에게 한결같이 호통을 듣고 대승정신에 대한 설법을 듣고 배우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한국 근대불교는 만해 한용운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만해는 스스로 근대불교의 시공을 개척해 왔고, 근대불교의 사상적 내용을 확립하고, 불교가 지향해야 할 길을 제시해 온 인물이다. 시절은 엄혹하고 나라의 운명은 풍전등화와 같아서 역사는 위기를 헤쳐 나갈 인재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었다. 외적으로는 일제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구할 민족지사를 기다렸고, 교단 내적으로는 억압을 혁파하고 불교 중흥을 이끌 걸출한 스승을 요구했다.

나아가 민초들의 정신을 일깨우고 역사를 움직일 수 있는 위대한 사상가와 문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해는 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백절불굴(百折不屈)의 민족지사로, 조선불교의 개혁을 선도하는 걸출한 승려로, 감미로운 시어로 대중들의 마음을 일깨우는 위대한 문인으로 활동했다. 만해의 삶을 돌아보면 그가 <유마경>에 관심을 가진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유마경>을 이해하는 것은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