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논설실장

꽃다운 유명 젊은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탤런트 설리다. 악성댓글(악플)이 너무나 아까운 스물다섯 청년의 삶을 앗았다.
그동안 대중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스타들이 세상을 등지는 일도 여럿 있었다. 2년 전 그룹 샤이니 출신 종현도 마찬가지다. 2007년 1월 가수 유니, 그해 2월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의 주인공 정다빈, 2010년 6월 '겨울연가'의 배우 박용하, 2011년 5월 그룹 SG워너비 출신 채동하 등이 댓글 상처와 치명적인 우울증을 견디지 못했다.

2008년 10월 국민배우 최진실의 죽음은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녀가 이혼 후 자녀에 대한 악플 등은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악플이 판치는 한국의 무분별이 결코 건전한 사회로 갈 수 없다는 느낌은 나만의 인식일까. 가수 최진영이 누나 최진실의 뒤를 따라, 그리고 전 남편 조성민이 모두 40세 전후로 잇따라 사망했다. '베르테르 효과'를 우려하는 모방 자살의 흔적들이다. 2005년 '번지점프를 하다'의 배우 이은주가 25세의 나이로 사망한 직후 비슷한 모방범죄가 폭증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 우리나라는 최고도의 미디어 환경이 구축됐다. 신문, 방송, 통신의 융합은 전통적인 매체의 근간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모바일 소셜미디어가 손 안의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에 댓글의 파급력은 진행형이다. 사실과 진실이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찬성과 반대, 좌우가 대립하며 완충지대를 허용하지 않는 상처투성이다. 악플이 선플을 압도하고, 반성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형국이다.

나는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보인 진영 투쟁도 쉽게 봉합될 리 없다는 점이 맘에 걸린다. '보통' '중도'가 없는 시대에서 극단의 광장정치가 자유민주주의의 성숙을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이미 대의정치의 무능과 모순은 만천하에 들어났다. 얼마나 더 이념과 정책을 달리하는 정권을 갈아치우고 체험해야 선진 통합사회로 갈 수 있을까.
둘로 쪼개진 조국을 보며 진영의 접점이 어딜까 고민한다. 공정과 부정 시비로 불거진 우리 사회의 비정상을 치유하는 노력이 절실하다.
선플은 자살충동을 극복하는 '파파게노의 효과'임에 틀림없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지 않는가. 긍정의 힘은 성장하는 아이들뿐 아니라 국력도 키운다. 나부터 베르테르의 슬픔이 파파게노의 위안으로 작용하는 시대를 위해 한 발 나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