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길 한·인도의원친선협회 회장·국회의원

국회외교통일위원을 맡고 있는 필자는 지난 14일 주인도대한민국대사관 국정감사 참석 차 인도 뉴델리에 다녀왔다. 매번 인도에 갈 때마다 발전의 폭과 속도에 놀라곤 한다. 인도의 경제 뿐 아니라 정치 및 외교 전략에도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

지난 4월11일부터 5월 19일까지지 38일 동안 전자투표로 실시된 인도의 총선거에는 총 9억 명 유권자의 67.1%인 6억여 명이 투표에 참가했다. 한화 약 10조 원의 선거비용이 든 세계 최대 민주주의 축제였다. 폭동, 시위, 부정선거, 불복 논란 없이 하원 545석 중 모디 총리가 이끄는 인도국민당(BJP)이 303석을 획득하여 과반수를 넘은 대승을 거뒀다.

야당이 농가부채를 탕감하는 등의 대폭적인 복지공약을 했음에도 여당이 승리한 이유는 이미 모디 총리가 농가부채 탕감 정책을 실행 중이었고, 화장실, 전기, 가스보급을 위해 저소득층에게 연간 6천 루피(한화 10만원 상당)를 일괄 지급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된다. 인도의 GDP는 2018년 기준 약 2조 7167억 달러로 2025년까지 5조 달러를 목표로 하여 매년 6%이상 고도성장을 하고 있다. 모디 총리는 특유의 추진성과 청렴으로 높은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있다.

인도가 의회민주주의를 채택하면서도 13억 인구를 훌륭하게 통합시키고 경제발전을 해나간다면 중국의 공산당 일당 독점의 정당성에 심각한 도전이 될 수 있다. 인도의 집권당은 당원 수가 1억 1천만 명이 넘는다. 그 동안 세계 최대 정당이라고 주장해 온 중국공산당의 8천 만 당원수를 훨씬 초과한 것이다. 필자는 지난 7월 5일 뉴델리를 방문하여 인도국민당 대표를 만나 한국 민주당과의 상호교류를 협의하기도 했다.

한-인도 교역량은  215억 달러로 삼성전자는 뉴델리 근방에 연 1억 3천만 대를 생산하는 세계 최대의 핸드폰 공장을 가동 중이고 현대차는 현지 누적 9백만 대를 생산하면서 인도 시장의 19%를 점유하여 2위의 자동차 기업으로 선전 중이다. 중견 벤처기업들의 진출도 늘어나고 있다. 인도가 한국의 미래전략에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국가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그간 인도는 비동맹외교의 중심이었다. 강대국들이 핵을 독점하는 핵확산방지조약(NPT) 체제를 반대하고 독자적으로 핵개발에 성공했다. 5대 핵 강국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재래식 무기 공격에 대응해 선제적으로 핵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No First Use’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인도는 미국, 일본과 3자 정상회의를 운영하는 동시에 중국, 러시아와 3자 정상회의도 하고 있다. 시진핑과 푸틴이 주도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에도 참여하고 있고 지난 9월에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 제5차 동방경제포럼에는 200여명의 대표단을 보내기도 했다. 미-중, 미-러 대결구도를 넘어서는 광폭 외교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자유롭고 열린 인도 태평양(FOIP, Free and Open Indo-Pacific)’ 전략에 대해서도 인도는 국제 해양 질서를 원론적으로 존중한다는 입장이지, 우리나라 보수언론의 호들갑처럼 남중국해에서 양국이 공동 군사훈련을 할 정도로 발전할 일은 아니다. 모디 총리가 시진핑 주석에게 제안하여 두 사람이 1년에 한 번씩 배석자 없이 한적하게 쉬면서 비공식적이고 허심탄회한 대화의 자리를 마련했다고 한다. 작년은 중국 우한에서, 지난주에는 첸나이에서 만났다. 

인도 뿐 아니라 베트남, 싱가폴, 필리핀 등도 미중 양측과 모두 우호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극단적인 양자택일 상황을 회피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한국의 보수언론은 미중 대결구도 속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을 미리 상정하고 과장하여 문재인 정부가 미국편에 설 것을 종용하는 수많은 사설과 칼럼을 쏟아내고 있다. 한미동맹은 한반도 안보문제 해소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중국과 러시아를 군사적 적대국으로 만들어 한미일 동맹으로 소(小) NATO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한미동맹을 주축으로 하되, 미중 혹은 미러 간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극단적 상황을 자주적인 외교역량으로 돌파해 나가야 한다. 인도는 대국이고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패배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은 지정학적으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또 그에 걸맞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임을 알아야 한다.

무섭게 성장하는 동시에 주변국과의 우호관계를 꼼꼼하게 다지는 인도의 지혜를 대한민국도 배워야 한다. 그래서 이토록 혼란스러운 국제정세 속에서 굳건히 중심을 잡고 우리의 국익을 지켜내야 한다. 강대국들이 우리의 국익을 챙겨줄 것이라고 믿는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자주적이고 능동적으로 우리의 미래를 개척해나가는 전략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