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호 평택대 상담대학원 교수

어린 시절에 독심술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상담 공부를 할 때도 같은 마음이 생겼다. 상담을 받으러온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고민을 딱 맞추어 말해주면 정말 멋진 상담자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회에 나와서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면 속거나 손해보지도 않고, 필요하면 그들을 전부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뜻하지 않게 그런 통로가 생겼다. 바로 온라인상에서 펼쳐지는 댓글이다. 댓글은 내가 쓴 글이나 행동, 혹은 행위에 대해 타인들이 속으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통로였다.
댓글은 어느 순간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됐다. 지지하는 댓글이 많으면 자기가 옳다고 믿고 신나 한다. 반대하는 댓글이 많으면 상처를 입고, 상황을 반전시키고자 노력하게 된다. 그 결과 신문기사를 읽을 때도 기사의 내용보다 자신의 의견에 동조하는 댓글이 얼마나 되는가를 더 관심 있게 보는 경우도 생긴다.

댓글에 힘이 생기는 순간부터 그것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의견이라는 미명하에 때로는 폭력을 구사하고, 자유롭다는 명분하에 욕구 불만을 쏟아낸다. 선한 명분하에 사람들을 조종하려는 날카로운 칼날을 휘두르기도 한다. 댓글이 폭력적일수록 더 큰 영향력을 가질 때가 있다. 한 사람의 의견에 여럿이 몰려와 그의 입을 막아버리거나, 서로 작당하여 '좋아요'를 달며 전체 의견인 양 호도할 때가 그렇다. 이 경우 댓글은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여론을 움직이는 수단으로, 타인을 조종하는 도구로, 자기의 힘을 보여주는 통로로 악용된다. 진솔한 글에도 폭력적인 댓글들이 달린다. 글을 올린 사람이 얼마나 성실하게 노력하였는가에 대한 관심은 없다. 자신의 마음에 들면 과하게 동조하고, 반대되면 지나치게 원색적인 비난을 날린다. 어느 것이든 폭력적이다. 댓글은 진정한 속마음인가. 댓글은 진정한 마음의 소리를 듣고, 서로 만나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거짓된 마음이 진실처럼 존재하는 것들도 있다.
진솔한 나의 의견보다도 그들이 무엇이라고 판단할 것인가에 사로잡히게 된다. 댓글은 독심술의 통로가 아니라 세뇌의 함정이 된다. 댓글이 거꾸로 나를 이렇게 읽고, 보라고 강요한다.

이런 생활은 사람을 건강하게 만들지 못한다. 상담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건강하다고 믿는다. 건강할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제시하고, 타인의 의견을 들으며 함께 변화해 나간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의 의견은 가슴 속에서만 칼날처럼 머무른다. 어느 날 상대편을 단칼에 베어버리는 판단으로만 드러난다.
고민이 된다. 진심을 이야기하는 것이 상처가 되는 것이 아닌가. 한 가지 안 것이 있다. 댓글은 그 사람의 속마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의식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다. 내가 나답게 글을 쓰듯이, 그는 그답게 글을 쓴 것 뿐이다. 건강한 사람은 상호 성장을 도모하는 댓글을 쓸 것이다.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타인의 마음을 흔들어 이기적 욕심을 채우는 댓글을 만들 것이다. 이제 각자 자신의 마음을 댓글로 표현하자. 단, 댓글은 올리는 사람의 인품과 인식 수준이라고 생각하면서 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