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이학박사
▲ 도깨비 바늘 /사진제공=국립생물자원관


아침 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어오면서 이제는 제법 옷깃을 여미게 하는 완연한 가을이다. 가을은 한 해 동안 무럭무럭 자라났던 여러 식물이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려 다음 세대를 번식시키기 위한 종자 결실의 시기이다. 요즈음 가을 들판 또는 산길을 다니다 보면 어느 순간에 스쳐지났는지 자그마한 열매들이 바지와 소매자락에 붙어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 중에서 흔하게 달라붙어 있는 것들이 도깨비바늘의 열매이다.

도깨비바늘(Bidens bipinnata)은 국화과에 속하는 한해살이풀로 털가막살이, 차귀사리, 차귀초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호주, 인도, 아프리카까지 전세계에 널리 분포하는 식물이다. 어린순은 예로부터 데쳐서 나물로 먹거나, 말려서 약초로도 활용했다고 한다. 도깨비바늘의 꽃은 여름에서 가을 무렵에 노란색으로 작고 앙증맞게 달리는데 다른 꽃들보다 그다지 관심을 못 받고 지나간다. 하지만 가을에 길이 1~2cm의 열매를 맺게 되면 이 열매의 끝에 달린 가시 같은 관모가 갈고리처럼 사람의 옷이나 짐승의 몸에 들러붙게 된다. 끝이 매우 뾰족하기 때문에 옷도 뚫고 들어와 살갗을 찔러대기도 한다. 걸어가면서 털어낼까하면 갈고리처럼 워낙 잘 들러붙어 있어 떼어내기도 힘들다. 오죽하면 옛 어르신들은 도깨비바늘을 가을 밭일을 하고 돌아오면 항상 몰래 붙어 내 집안에 들어오는 식물이라 하여 '도둑놈'이라고도 부른 것이 이해된다.

식물에 있어서 가시는 식물에서 관찰되는 바늘모양의 사물들을 일컫는다. 엄밀하게 말하면 식물학에서는 그들의 발생기원의 차이에 따라 경침(thorn), 엽침(leaf spine), 바늘모양돌기(prickle) 등으로 구분해 사용하기도 한다.
식물에서 나타나는 가시의 형태나 역할은 매우 다양해서 발달의 차이, 모양 등의 차이에 따라 여러가지로 구분해 설명할 수 있다. 탱자나무, 유자나무처럼 줄기나 가지가 변형되어 바늘모양의 구조를 나타내는 경침, 호랑가시나무처럼 잎의 가장자리나 끝 부분에 바늘처럼 나오는 엽침, 장미와 엄나무처럼 줄기의 표피나 수피에서부터 발달하는 가시 모양의 돌기 등이 있다. 또한 바늘 모양의 구조를 가지고 있거나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식물이름이 '바늘'을 가진 경우도 있다.

바로 도깨비바늘이 그러한데 열매 끝에 날카로운 바늘모양의 돌기들을 가지고 있어 이러한 구조물을 이용해 동물이나 사람들에게 붙어 씨앗을 멀리 퍼뜨리는데 이용한다. 친척뻘인 민들레나 사데풀처럼 씨앗을 바람에 널리 퍼뜨릴 수 있는 솜털 모양도 아니어서 자신들의 씨앗을 널리 퍼뜨리기 위한 전략으로 자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동물들을 이용하려 한 것 같다. 도깨비바늘의 전략은 식물이 다른 생물을 활용하는 방법으로서 식물의 진화적응력을 고려하면 꽤 흥미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인간도 예로부터 바늘을 지닌 식물을 여러모로 이용해 왔다. 주거침입을 막기 위한 울타리로서, 바늘(가시)이 달린 식물을 담장 주변이나 창문 앞에 심어 외부의 침입을 막는데 활용했다. 정원이나 화단, 곡물을 재배하는 곳을 야생동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해당화, 찔레꽃, 향나무, 용설란 같은 바늘을 가진 식물로 울타리나 담장을 만든 것도 그러한 예들이다. 때로는 '그리스도의 면류관'처럼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도깨비바늘의 가시는 어쩌면 한해살이로 끝나는 자신들의 유전자를 더 많이, 더 넓은 곳으로 이동하고 싶어하는 생존전략의 물리적 도구이자 또한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는 심리적인 도구로서 사물적 가치를 나타내는 것 같다.
옷에 붙은 도깨비바늘의 열매가 한 식물의 처절한 생존전략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짜증이 나기보다는 천천히 때어내 더 멀리 퍼지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열매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저 먼 곳에서부터 전해오는 고대 대륙의 유전자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