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순 한신대 통일평화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

 

나는 광화문 태극기집회와 서초동 촛불집회 둘 다를 다녀왔다. 지난 3일 오후 광화문집회에서 나이드신 60~70대 노인들이 가진 나라에 대한 걱정과 충정을 보았다면, 9월28일 서초동 검찰 앞에서는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읽을 수 있었다. 서초동 검찰 앞에서는 시민이 주체가 되어 총론에서 각론으로 넘어가는 새로운 민주주의와 개혁의 장이 열리고 있었다.

이제까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집회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강 네 가지의 입장으로 나뉘는 것 같다. 첫째는 진보적 시각을 갖고 조국 임명을 찬성하는 사람, 둘째는 진보적 시각을 갖지만 조국 임명을 반대하는 사람, 셋째는 보수이며 조국 임명을 반대하고 문재인 대통령 탄핵이 필요하다고 보는 입장, 넷째는 보수이며 조국 임명을 반대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탄핵이 필요하다고 보지 않는 입장이다. 지금은 첫째 입장과 셋째 입장이 나서서 시위를 주도하고 있다.

내가 대립되는 양 진영의 집회를 다 참석했다고 하니까 사람들은 내가 양비론자인가, 아니면 중도인가를 생각하는데 단언컨대 나는 양비론자도 중도파나 입장이 없는 부동층도 아니다. 나는 검찰개혁을 지지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런 입장은 아니었다.

조국대전이 지속되는 지난 두 달간 조국을 비판하는 입장에서 검찰개혁이 조국 밀어내기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바뀌는 '생각 바꾸기' 과정을 밟았다. 한마디로 나는 검찰개혁이야말로 지금 이 시기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정리하게 됐다.

처음에 나는 무엇보다 논문으로 지난 십 수년간 밥을 먹고 살아온 연구자이기 때문에 고등학생인 조국 딸이 등재지 등급을 지닌 학술지에 논문 제1저자라는 사실을 용서하기 힘들었다. 내가 기를 쓰고 1년에 겨우 한 두 편 쓸까 말까한 논문을 고등학생이 그렇게 쉽게 내다니 심지어는 제1저자라니. 생각할수록 괘씸하고 기가 막혔다.
대학사회는 권력 관계에 의해 논문이 권력 위계가 낮은 위치에 있는 자가 위로 논문을 상납하는 일이 자주 발생한다. 서로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공공연한 사실이며 많은 비하인드 스토리가 존재한다. 그런데, 권력을 가진 아버지가 있으면 고등학생이라도 그렇게 쉽게 논문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부의 권력이 유형무형으로 세습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조국을 용서하고 지난달 28일 서초동에 가야겠다고 결심한 동기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검찰의 지나친 수사행위와 인권침해를 보면서였다. 11시간 검찰수사를 보면서 한 고등학생의 표창장이 설사 위조됐더라도 그것조차 아직 불확실한 정보인데 왜 검찰이 저렇게까지 대규모 인원을 동원해 무리한 장기간 수사를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됐다.

둘째는 조국의 '시사인' 인터뷰이다. 취임 2주만의 인터뷰인데 "죽을 힘을 다해 검찰 개혁하겠다"는 말이 내 마음을 건드렸다. 그때 나는 이 사람이 설사 하자가 있더라도 용서하고 기회를 주어야겠다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원래 완벽하지 못하니까. 나 역시 많은 실수를 하면서 산다. 특권이 없었기에 그와 같은 문제는 없었지만 그는 일종의 특권층이 아니던가. 지난달 27일 스터디하는 여러 친구들과 모여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었는데, 조국에 대한 비판도 있었고 검찰에 대한 비판도 있었다. 문제는 한 달이라는 꽤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결정적인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는 이를 검찰개혁을 방어하는 검찰조직과 관료들의 거센 저항이자 항명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내리게 됐다. 물론 확실한 증거가 나오면 이런 결론은 또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대중들의 박탈감을 자극한 여러 프레임 속에서 어디까지 사실인지 불분명한 채 잡탕밥처럼 만들어진 정보의 바다에 온 대한민국이 빠져 있다. 과거 고 노무현 대통령에 검찰이 뒤집어씌운 논두렁시계 이야기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내가 이렇게 입장을 시원하게 밝히면 나에게 박수를 칠 사람도 혹시 있지만 돌을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사실 지식인은 전지적 시점에 서서 양비론적 시각을 견지하는게 가장 무탈하고 수명이 긴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전지적 시점을 포기한 이유는 나는 지식인이기 전에 먼저 한 사람의 시민이기 때문이다. 우리 대한민국을 이끌고 나갈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필요한 우선순위를 헤아려 이를 우선시하는 전략적 판단을 하기로 하며, 나의 감정이나 협소한 경험, 트라우마에 빠져서 사안을 판단하지 않고 좀더 냉정하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 바람직한지를 판단하려고 한다. 나는 한 사람의 시민이다.



▶김화순 박사는 2009년 북한이탈주민 고용에 미치는 요인을 분석한 실증 연구로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인력개발대학원에서 인력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1년부터 북한노동에 고용 연구방법을 접목하여, 시장화 시기 북한 노동세계의 변화 및 계층분화, 여성노동 등을 연구해온 이 분야 전문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