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경지역 양돈농가들이 초토화됐다. 애써 기른 돼지들이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살처분되고 있다. 돼지열병 예방을 위해 강제로 살처분되는, 차마 눈뜨고 못 볼 일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ASF가 확진된 농장은 일부 과실이 인정돼 실제 보상가에 못미치는 80~85%의 살처분 대가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과연 양돈농가들의 과실이 있을까 하는 것이다.
ASF는 지난 2007년부터 동구권과 유럽에서 재 발병하기 시작했다. 그중 유럽에서는 러시아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2007년부터 2017년까지 46개 지역에서 1100여건이 발생해 80만 마리의 돼지들이 살처분됐다고 한다.

지난 2017년 우리나라를 방문한 러시아 연방연구소 알렉산드로 말로 박사는 당시 러시아의 피해는 직접 손실만 8000만달러, 이동제한이나 재 입식 등을 고려하면 12억달러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힌 바 있다.
2017년 러시아를 휩쓸고 지나간 ASF는 이후 2018년 8월 중국 랴오닝성 선양지역에서 아시아 최초로 발병해 1억마리 이상이 살처분되면서 중국 양돈산업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또 북한에도 전염돼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는 것을 정부도 확인했다. 주변국들의 상황이 이렇다면 우리나라 방역당국은 충분히 감염 가능성을 염두해 두고 사전 예방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동구권에서 러시아, 중국과 북한까지 이어지는 ASF의 경로를 예견하고 선제적인 방역과 양돈농가의 주의를 홍보해야 함에도 그렇지 못한 것은 방역당국의 잘못이라 할 수 있다.
지난달 17일 파주에서 ASF가 발병하고 나서야 허둥지둥 방역초소를 설치하고, 돈사를 소독하는 등 어수선한 모습에서 우리나라 방역체계가 얼마나 허점 이 많았는지가 여실히 드러났다는 지적도 많다.

그런데 이제 정부의 구멍 뚫린 방역 허점을 양돈농가에 떠넘기려 하고 있어 빈축을 사고 있다.
물론 정부는 방역 허점을 인정하지 않겠지만 생때같은 돼지들을 땅에 묻어야 하는 양돈농가의 현실에서 방역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