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 인천녹색연합초록교사

 


시간은 돈이다. 화폐가 중심인 사회에서 우리가 하는 무엇이든 돈으로 바로 환산된다. 돈이 되지 않는 무엇은 무가치라는 억울함을 피할 수 없다. 돈이 되는 행위에는 반드시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한때 빠른 시간 안에 많은 일이 최상이었다. 그래서 현대사회에서 속도는 덕(德)이 되고 돈이 됐다. 인천에서 부산까지 3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면 시간을 줄이는 것이 바로 기술이고 돈이다.
지난 추석 기간은 연휴라고 하지만 주부인 나에게는 강도 높은 노동의 시간이었다. 요양원에 계신 노모를 모시고 나와야 했고, 어머니를 뵈러 올 형제, 자매, 친척들의 음식 장만과 이부자리 등을 손보느라 명절 전부터 이미 명절이었다. 나의 수고로 모두가 즐거울 수 있다는 공리주의적 생각은 기꺼웠으나 나라는 존재성이 함께 휘발된다는 것에는 늘 그렇듯이 동의하기 어려운 이중적 상황을 감내해야 했다. 돌이켜보면 추석연휴 3박4일은 쉼이 아니라 속도전이었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잠시나마 휴가를 가졌다. 길의 마력이 망각에 있듯 나서는 순간 일상이 잊혀지는 듯했다. 모든 관심이 길로 가 있다. 차창 밖의 풍경이 전부가 됐다. 어떤 것도 할 수 있으며, 어떤 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경계에 섰을 때야 비로소 나는 내가 됐다. 시간도 나의 것이다.
구절초는 아직이고 따스한 가을볕에 피기 시작한 보랏빛 쑥부쟁이의 하늘거림이 대장장이 딸의 슬픈 전설을 떠오르게 한다. 늦게 꽃대를 올린 노랑상사화에 눈을 맞춰 그리움이라는 단어를 오랜만에 떠올렸다. 산초잎 사이로 산호랑나비의 종령애벌레가 느긋한 자세로 매달려 있다. 곧 번데기가 될 참인가 보다. 고된 하루를 마감하는 자들에게 주는 하늘의 축복이라 했던가. 석양녘의 핏빛 노을을 한없이 바라보고 마음속에 차곡 담는다. 벌판에 고개 숙인 '만종'의 숙연함이 가슴에 스며든다. '빨리 빨리'에 치인 시간 속에서는 건져낼 수 없는 보석 같은 풍경들이다. 감사란 단어는 이럴 때 나온다.

'왜 한적하고 어수선한 시골로 여행을 가냐'고 19살 막내는 늘 묻는다. 이병률 시인의 말을 빌려 '시간을 사러간다' 말했다. 생소한 여행지에서 어차피 남는 것이 시간뿐이라고. 그래서 나는 나와 친구가 되어 서로를 보듬었으며 나만을 위한 시간을 소유했으므로 하루가 24시간이 아닌 두 배의 시간을 지닌 부자였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 덕분에 아주 많은 것들을 느끼고 볼 수 있었다. 한적하게 천천히 걷는 미음완보(微吟緩步)의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