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례용으로 깨뜨려 묻어"…무덤 지름은 28m, 지하식 아닌 지상식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국립경주박물관 제공

현존 말모양 토기들을 압도하는 최대 크기 말모양 토기가 신라 적석목곽묘(積石木槨墓·돌무지덜넛무덤)인 경주 금령총(金鈴塚)에서 출토됐다.

국립경주박물관은 금령총 발굴조사 중 무덤 둘레에 쌓는 돌인 호석(護石) 바깥쪽에서 높이가 56㎝에 이르는 신라시대 말모양 토기를 찾아냈다고 30일 밝혔다.

말모양 토기는 머리와 앞다리 쪽만 발견됐으며, 등과 배 부분은 깔끔하게 절단된 듯한 흔적이 있어 의례 과정에서 고의로 깨뜨려 부장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조사단은 설명했다.

말은 입을 벌리고 혀를 내민 모습이며, 얼굴·목·발굽 등 각 부분을 정밀하게 표현한 점이 특징이다. 신체 비율도 실제 말과 흡사한 편이다.

금령총은 일제강점기 조사에서 신라 토기 중 백미로 꼽히는 국보 제91호 기마인물형 토기가 나온 무덤이라는 점에서 이번 조사 결과가 주목된다. 기마인물형 토기 두 점은 높이가 25㎝ 안팎이다.

신광철 국립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말모양 토기에 대해 "국보 기마인물형 토기와 제작 방법이 거의 동일하다"며 "제작 시기는 금령총을 조성한 무렵인 5세기 말이나 6세기 초로 짐작된다"고 설명했다.

신 연구사는 "국보 기마인물형 토기는 시신을 두는 매장주체부에서 나왔다"면서 "이번에 찾은 말모양 토기는 호석 바깥쪽 깨진 항아리 위에서 발견됐다. 항아리 안에 두었던 것인지, 아니면 항아리 위에 얹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말모양 토기 뒷부분이 추가 조사에서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호석 외부에서는 제사용 토기 30여 개체가 나왔고, 그 주변에서 말모양 토기 이외에도 말과 소 같은 포유류 뼈와 조개류, 뚜껑 있는 접시인 개배(蓋杯), 토제 방울, 유리구슬, 쇠스랑이 발견됐다.

한편 경주박물관은 지난 4월 시작한 제2차 금령총 발굴에서 호석 외부 유물을 수습하는 한편 무덤 조성 방법과 규모를 파악하는 데 집중했다.

금령총 직경은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8m가량 더 긴 28m 내외로 확인됐고, 지하식이 아닌 지상식 적석목곽묘로 드러났다. 이로써 지금까지 신라 금관이 나온 적석목곽묘는 모두 지상식 무덤이라는 사실이 규명됐다고 박물관은 강조했다.

호석은 계단처럼 2단으로 쌓았다. 너비는 1.3∼1.5m이며, 높이는 약 1.6m다. 각종 유물이 발견된 호석 외부에는 40㎝ 두께로 땅을 다진 뒤 잔자갈을 깔았다.

아울러 금령총과 맞물린 또 다른 고분 4기도 확인됐다. 봉토와 호석을 갖춘 지름이 약 5m인 옹관묘를 비롯해 적석목곽묘 2기, 소형 분묘 1기가 드러났다.

신 연구사는 "옹관묘는 금령총보다 먼저 조성한 듯한데, 정확한 시기를 알려면 연구가 필요하다"며 "금령총 인근 쪽샘지구에서는 중심 고분 주변에 소형 무덤이 있는 사례가 적지 않지만, 왕실 묘역인 대릉원 일대에서는 이 같은 양상이 나타난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금령총 고분 주변 문화층 양상을 파악해 보니 5∼6세기 신라 문화층이 현재 지면보다 2m 아래에 있었다"며 "식리총과 노동동 고분군 조사와 복원 과정에서도 생각보다 낮은 신라 문화층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금령총은 일본 학자 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가 1924년 조사해 기마인물형 토기와 금관(보물 제338호), 금제 허리띠, 장신구, 유리 용기, 칠기류, 마구, 토기를 출토했다.

그러나 당시 발굴은 유물 수습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이에 경주박물관은 지난해 9월 고분 규모와 축조 방식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94년 만에 다시 발굴했다.

박물관은 다음 달 8일 현장 설명회를 열고, 올해 조사를 사실상 마무리한다. 내년 봄에는 매장주체부를 발굴할 방침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