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여자경찰서 옛터 및 전창신 경감 기념물' 프로젝트 완성
▲ 29일 중구 신포로23번길 49 중앙프라자 앞에 설치된 '인천여자경찰서 옛터 및 전창신 경감 기념물'.

 

▲ 1948년 12월2일 촬영한 제1관구 경찰청 인천여자경찰서 소속 여경 기념사진.

 

▲ 옛 인천여자경찰서 전경.

 

▲ 홍인성 중구청장.

 

 

1919년 함흥 만세운동 주도한 독립운동가이자
광복 후 여성계몽·조국치안 위해 앞장선 경찰
전창신과 그가 헌신한 인천여자경찰서 재조명

중구·인천경찰서, 가로 3.2m 세로 1.8m 碑에
경감의 업적 녹여 시민 자긍심·역사의식 고취





가로 3.2m·세로 1.8m 크기의 기념물엔 '민주경찰의 역사를 이은 독립운동가' 전창신(사진) 경감의 업적과 투철한 애국심이 녹아 있다.

인천경찰청과 중구는 올해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지역 내 역사적 장소와 자랑스러운 위인들을 발굴해 널리 알리고자 '인천여자경찰서 옛터 및 전창신 경감 기념물' 제작·설치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이 프로젝트는 인천경찰의 뿌리이자 여성 독립운동가인 전창신 경감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는 평가다.

기념물엔 전창신 경감의 모습과 업적이 새겨져 있다.

기념물에 따르면 전창신 경감(1901~1985)은 1919년 3월 함흥 만세 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한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돼 8개월간 옥고를 치른 열혈 여성 독립운동가다.

광복 후 1946년 조국 치안의 선봉에 서기 위해 경찰관이 됐다.

1950년 11월 2대 인천여자경찰서장으로 부임한 그는 1952년 10월까지 여성 피해자와 피난민 등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힘썼다.

특히 지역 내 '애육원'이란 고아원을 설립해 전쟁고아와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들을 돕는데 앞장섰다.

퇴임 후 1981~1983년 3·1운동 여성동지회 8대 회장을 역임한 뒤 1985년 세상을 떠났다. 1992년 정부는 전창신 경감에게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기나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전창신 경감의 애국심과 활약상은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달 23일 충북 충주 중앙경찰학교에서 열린 신임 경찰관 졸업식에서 "광복 후에는 많은 독립운동가가 경찰에 투신해 민주경찰의 역사를 이었다"며 "독립운동단체 결백단에서 활동한 안맥결 제3대 서울여자경찰서장, 함흥 3·1운동의 주역 전창신 인천여자경찰서장 등을 비롯해 지금까지 모두 51명의 독립운동가 출신 경찰이 확인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창신 경감을 소개할 땐 인천여자경찰서의 자취도 빼놓을 수 없다. 기념물에도 인천여자경찰서를 조명하고 있다.

정부는 광복 직후 혼란했던 시기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전국 4곳(인천·서울·대구·부산)에 여자경찰서를 설치했다.

인천여자경찰서는 중구 선화동에 처음 세워졌고, 초대 서장은 현주복 경감이 맡았다. 당시 인천·경기지역을 관할하는 제1관구 경찰청 소속으로 인원은 80명 정도였다.

여자경찰서는 6·25전쟁 이후 중앙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자 경찰관의 주요 업무는 성매매 단속과 청소년 지도·보호, 여성 계몽, 범죄 정보 수집 등이었다.

여성은 반드시 여자경찰서에 수용하도록 하고, 여성 사건엔 여자 경찰관이 참여하도록 한 점 등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선진적 제도였다는 평이다.

여자경찰서는 여러 방면에서 맹활약했다.

그러나 일반 경찰서와 업무 경계가 명확하지 않고, 급속한 인구 팽창과 도시화로 치안 환경이 변화하면서 1957년 폐지됐다.

이후 여자 경찰관들은 일반 경찰서에 배치됐다.

최희운 인천경찰청 경무계장은 "인천시민의 자긍심과 역사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인천경찰청과 중구가 함께 기념물을 제작해 역사적 장소에 설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홍인성 중구청장 "여성친화도시로 나아갈 역사·문화적 기록"


"인천 중구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자경찰서가 존재했다는 것은 역사·문화적으로 큰 의미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인천여자경찰서 터 안내판 제작을 추진한 홍인성 중구청장은 이번 제막식이 뜻깊다고 강조했다.

여성인권이 크게 대두되지 않았던 시절에 여자경찰서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인 가운데 중구에 위치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알려지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인천여자경찰서 터 안내판 설치 논의는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한 연구로부터 출발했다.

"중구에서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해부터 백범김구 선생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용역을 추진해왔어요. 그러던 중 임시정부 초기에 김구 선생이 경찰 국장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여자경찰서의 존재도 드러났죠. 이후 여자경찰서의 역사적 의미를 찾기 시작하다가 인천지방경찰청과 함께 안내판 설치를 준비했습니다."

홍 구청장은 인천여자경찰서의 상징성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여자경찰들이 성매매 단속과 청소년 보호, 여성 계몽 등에 나선 기록은 이미 오래 전부터 성평등 가치관을 받아들였다는 점을 보여준다는 이유다.

"여자경찰서 터 안내판은 기념비 적인 의미를 담고 있어요. 터를 지나가는 주민이나 관광객들이 여자경찰서가 있었다는 사실뿐 아니라 과거 여자경찰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 지 알 수 있죠. 특히 중구가 여성친화도시로 나아가고 있는 과정에서 안내판 제막을 하게돼 더욱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 최희운 인천경찰청 경무계장.
▲ 최희운 인천경찰청 경무계장.

 

-최희운 경무계장 "전창신 경감, 민주경찰 염원 몸소 실천"


"전창신 선배님은 민주경찰의 염원을 몸소 실천하신 분입니다."

인천경찰청 경찰역사 태스크포스(TF)를 이끈 최희운 인천경찰청 경무계장은 2대 인천여자경찰서장을 지낸 전창신 경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최 계장은 "전창신 선배의 자서전 '작은 불꽃'을 읽으면서 조국 독립을 위한 투쟁과 광복 후 민주경찰이 돼 국민에게 진정으로 봉사하고자 했던 열망을 조금은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전창신 선배는 오랜 기간 일제경찰의 핍박을 받았지만 진정한 국민의 공복이 되겠다는 각오로 경찰에 투신했고 '일제경찰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자'며 전국 경찰서를 순회하며 강연을 펼치는 등 민주경찰의 염원을 몸소 실천했다"고 소개했다.

인천경찰청은 전창신 경감 기념물 활용법도 구체화한 상태다.

그는 "전창신 경감 기념물을 수봉공원 현충탑, 강화경찰서 정옥성 경감 추모시설과 연계해 '인천경찰 역사순례길'로 지정하고, 기능별 워크숍이나 인사 발령자 등의 답사 및 참배를 통해 민주·인권·봉사 경찰의 초심을 되새기는 상징물로 활용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끝으로 "경찰청 임시정부100주년 기념사업TF와 인천개항장연구소 강덕우 소장이 이번 기념물 제작과 관련해 사료 발굴과 고증에 참여해줬다. 특히 남다른 역사의식과 추진력을 갖고 있는 홍인성 중구청장의 전폭적 협조와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글·사진 박범준·김신영 기자 parkbj2@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