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민원 가이드라인 유명무실...인천시 '보호 지침'안 두달째 검토 중
인천 미추홀콜센터 상담사 홍성화(40)씨는 적수(붉은 수돗물) 사태가 일어난 지난 여름을 악몽으로 기억한다. 인천시는 민원 문의 번호로 '120'을 안내했지만, 현장 대응 매뉴얼은 부실했다. 하루에도 몇 차례 매뉴얼이 바뀐 날도 있었고, 상담사들이 담당 부서에 문의해도 묵묵부답인 날도 있었다고 한다. 20여명이 넘는 상담사들은 매일 일부 민원인들로부터 '앵무새처럼 입만 뻥긋한다'는 폭언을 들어야만 했다.

홍씨는 "당시 민원인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듣는 경우가 더 많았다"며 "고함을 치거나 따져 물어도, 상담사들은 내부 상황을 모르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26일 인천시에 따르면 적수 사태가 이어진 지난 6~7월 미추홀콜센터로 걸려온 상수도 민원 전화는 7만7971건이다. 두 달 간 발생한 전체 민원 18만5894건(41.9%)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비율이다. 악성·강성으로 분류된 민원 수도 672건에 달했다. 이는 욕설이나 성희롱, 장시간 민원을 이어가거나 반복적으로 불가능한 민원을 요구하는 경우 등을 가리킨다.

하지만 악성·강성 민원 가이드라인은 유명무실하다고 상담사들은 호소한다. 악성 민원에 대해 단계별로 대응하는 현행 매뉴얼에 따르면 상담사들은 직접적인 욕설·폭언을 세 차례 듣고 경고한 이후에야 전화를 끊을 수 있다. 폭언 대상이 상담사가 아니라고 부정한다거나, 욕설 없이 말꼬리를 잡는 경우에는 막을 방법이 없다.

미추홀콜센터 상담사 업무 환경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이어지자, 시는 지난 7월 '민원콜센터 상담사 보호에 관한 업무운영지침'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여기에는 악성·강성 민원일 경우, 경고를 통해 끊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블랙리스트로 등록해 반복하는 민원 행태를 막는 내용이 담겼다. 심할 경우 형사상 처벌도 지원하도록 했다.

하지만 두 달 넘도록 지침은 시행되지 않은 채 내부 검토가 늦어지고 있다. 시 시민봉사과 관계자는 "조문 검토를 마친 이후 이달까지 입법 절차를 마무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인천지역노조 미추홀콜센터분회는 이날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미추홀콜센터 상담사들은 서비스평가라는 미명 아래 '끊을 권리' 없이 방치되고 있다"며 "더 나은 공공서비스 제공을 위해 직접고용 등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김은희 기자 haru@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