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지난 추석 먼 남도까지 귀성 운전을 했던 지인의 얘기다. "휴게소·졸음쉼터가 금방금방 나타났다. 쉬다 달리다 하니 온전히 맑은 정신으로 차를 몰 수 있어 좋았다." 예전처럼 막히는 도로 위에서 잠을 쫓으려 자기 허벅지를 꼬집지 않아도 됐다는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졸음은 치명적이다. 높다란 방음벽이 쭉 이어져 내다 볼 경치도 거의 없다. 그래서 '세상에 가장 무거운 게 눈꺼풀'이고 '졸음에 장사 없다'고 한다.

▶올 상반기 고속도로 사망자가 78명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지난해 117명보다 33%나 줄었다. 늘어난 졸음쉼터 덕분이라고 한다. 국내 고속도로에 졸음쉼터는 2011년 처음 등장했다. 현재 도로공사 구간에만 226개에 달한다. 그 이전에는 거의 40∼50㎞를 달려야 나타나는 휴게소뿐이었다. 그나마 교통량이 적은 곳에는 더 찾아보기 어려웠다. 휴게소가 운전자 고객에 대한 서비스라기 보다 사업성을 먼저 따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착한 국민들은 오랫동안 비싼 도로비를 물면서도 졸린 눈만을 비벼야 했다. 고속도로의 원조인 독일권에서는 일찍부터 휴게소뿐 아니라 졸음쉼터를 만들었다. 미국이 원조인 모텔(Motor+Hotel)도 그 시작이 고속도로 운전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수도권 고속도로는 더 열악했다. 땅값이 비싸서인지 휴게소조차 전무했다. 오래 전 스스로 겪은 일만 가지고 기사를 하나 쓴 적이 있다. 어느 여름 주말 경기 가평에서 고속도로에 올랐다. 가다 서다 하며 인천까지 오는 동안 쉴 곳이라곤 없었다. 영동고속도로도 마찬가지였다. 용인휴게소가 마지막이었다. 모두 24시간 정체구간들이다. 그러다보니 톨게이트 갓길만 붐볐다. 참다 못한 운전자들이 볼 일들을 보느라 지린내가 진동했다. 담배꽁초 수북한 곳에 차를 대고 쪽잠을 청하곤 했다. 이후 지방의회들에서 '휴게소 설치 요구 결의안'이 채택됐다. 요즘 인기있다는 시흥하늘휴게소 같은 곳을 들러보면 격세지감이 든다.

▶늦었지만 도로공사가 잘 한 게 또 하나 있다.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졸음 방지' 캠페인이다. '졸음운전의 종착지는 이 세상이 아닙니다' '한번 졸음운전, 평생 후회 평생 고통' '겨우 졸음에 목숨을 거시겠습니까' '졸면 죽고 쉬면 산다' 등등. 최신작 중에는 '졸음 운전 가정 파탄'이란 것도 있다. 조수석의 아내가 운전석의 남편을 노려볼 것만 같지 않는가. 그런데 요즘 들어 그 캠페인이 좀 약해진 느낌이다. 더 세게 밀어붙일 일이다. 졸음쉼터도 더 늘려야 한다. 이런 것이 공기업이 마땅히 해야 할, '사람이 먼저다' 사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