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수용 진상규명 토론회
피해 생존자들 "도망쳐도 번번이 붙잡혀"
국가에 사과 요청
▲ 선감학원에 수용된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경직된 채 경기도 고위 공무원 시찰단을 맞고 있다. /사진제공=경기창작센터

 

"(선감학원에) 잡혀간 날부터 엄청 맞았어요. 거기에 9년을 있었는데, 도망치려는 시도를 15번은 했을 거예요."

선감학원 강제수용 피해자 이대준(63)씨의 증언이다. 이씨를 포함한 당시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경험을 지난 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선감학원 강제수용 등 인권침해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대책 마련 토론회'에서 적나라하게 알렸다.

이씨는 10살 때 보육원에서 도망쳤지만 선감학원으로 끌려갔다. 보육원에서 선감학원으로만 바뀐 셈이다. 이씨가 기억하는 선감학원은 곧 '두들겨 맞는 곳'이었다.

이씨는 "때리는 이유는 항상 있었다"며
"옷을 잘못 꿰었다, 지저분하다 등 모든 게 불량하다고 때렸다. 특히 마룻바닥을 탁탁 쳐서 먼지가 살짝 나오면 또 엄청 맞았다"고 말했다. 이어 "한번은 초를 (바닥에) 막 칠해서 걸레로 광을 내라고 했다. 그 조그만 애들이 매를 안 맞으려고 열심히 청소했다"고 했다.

또 다른 피해생존자 김성환(63)씨는 13살 때 선감학원에 잡혀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선감학원에서만 총 6년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두 번을 도망쳤지만 번번이 붙잡혔다.

김씨는 "당시 반찬은 새우젓, 밴댕이젓 따위였고 그조차도 시커멓게 썩은 거였다. 그때의 기억 때문에 지금도 난 젓갈 들어간 음식을 먹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선감학원에 들어간 이후부터 자신의 삶이 바다에 여러 차례 이리저리 휩쓸려 많이 부서진 조개와 같다던 김씨는 할 수 있다면 자신의 과거를 지우고 싶어 했다. 선감학원에서 나와도 글을 배우지 못하고, 일자리도 구할 수 없어 할 수 있는 것은 도둑질뿐이었다. 그렇게 평범하게 살고 싶었던 꿈은 국가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김씨는 "8살이 되면 학교 가고, 성인 되면 군대 가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 결혼하며 아이 낳고 사는 삶, 그런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러나 제일 평범하지 않게 살아버린 것 같다"며 "내 어린 시절을 몽땅 빼앗아간 국가에, 한창 꿈과 희망을 품고 살아야 했던 그 시간을 빼앗아간 국가에 제대로 사과받고 싶다"고 말했다.

13살 소년이었던 한일영(59)씨도 이 같은 이유로 영문도 모른 채 선감학원에 오게 됐다.
당시 가평에서 어머니와 살았던 한씨는 작은아버지 댁에 찾아가던 길에 단순히 혼자 있다는 이유로 붙잡혔다. 한씨는 선감학원에 들어간 뒤 매일같이 농사일을 해야 했다. 주어진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두들겨 맞았다.

그는 "농사에 관한 건 웬만한 건 다 했다. 추운데 양말도 없이 고무신 하나 신고 일했다"며 "보리밭이 되게 넓은 게 있었는데 그 넓은 데를 어린애들이 매야 했다. 허구한 날 일하고 매를 맞고 하다 보니까 집에 간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덜 맞을까, 어떻게 하면 일을 덜 힘들게 할까, 어떻게 일 할당량을 채울까 이런 생각에 급급했다"고 말했다.

이를 견디다 못한 한씨는 죽기 살기를 각오하고 탈출을 시도해 성공했다. 선감학원 생활 5년 만이다.
또다시 잡혀갈까 두려워 숨죽여 살아 온 그는 이제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국가에 진상규명과 사과를 적극 요청하고 나섰다.

한씨는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에 힘에 부칠 때면 망각이라도 한 듯 떠오르지 않다가도 기억이 한 번씩 튀어 오를 때면 여전한 울분에 휩싸인다"면서 "청산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역사에 올리는 건 창피한 일이다. 국가를 위해서라도 앞으로 역사를 배워야 할 애들을 위해서도 (선감학원 진상규명 문제가) 꼭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채은 기자 kce@incheonilbo.com


 

▲ 김영배 경기도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장
▲ 김영배 경기도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장

 

▲김영배 경기도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장 "피해자 특별법 만들어야"

"국가 폭력으로 망가진 선감학원 원생들의 삶을 이제라도 국가가 나서서 되찾아 줘야 한다."

김영배(사진) 경기도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장은 22일 이같이 밝혔다.
이를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바로 피해자들을 위한 선감학원 특별법 제정이다.

선감학원 수용인원 중 대부분은 12세 이하 어린 나이에 잡혀들어와 몸과 정신이 망가진 어린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한참 성장시기에 배급 식사량이 부족해 나무껍질, 열매, 곤충, 뱀이나 쥐를 잡아 굶주린 배를 채우며 살아야 했다. 그러면서 일일 노동 할당량이 있어 쉬지도 못하고, 이를 채우지 못하면 매를 맞았다.

김 회장은 "당시 아이들은 누에를 기르기 위해 가을걷이가 끝나는 시기에 야산을 개간해 그곳에 뽕나무를 심고, 월동을 대비하기 위해 맨살에 연탄을 업고 안아 2㎞가 넘는 염전 길을 걸어 운반해야 했다"면서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 외 모든 시간 노역에 시달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생존피해자들은 납치에 대한 심한 트라우마로 지금도 불안에 떨고 있으며 죄도 없이 오랜 감금 생활로 가족을 만나지 못해 지금도 독거노인이 상당수에 달한다"며 "국가적 차원에서 조사와 사과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선감학원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채은 기자 kc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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