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자부심 뒤엔 28년 피땀 있었다
▲ 경기도 양평 청운면에서 30년 가까이 하우스 수박을 재배하고 있는 '물 맑은 양평수박' 대표 김기호(60) 장인이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수박은 농사 3년 이후가 관건
한자리서 연작 땐 결함 나와
출하후 옥수수 심어 토양중화
밭마다 맞는 품종 찾아 재배
고된 노력끝 '연 3000통' 출하
경기도 대표 주산지로 우뚝

양평은 경기도 대표 수박 주산지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양평에서 수박이 재배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양평 청운면에서 1991년부터 30년 가까이 수박을 재배하고 있는 김기호 장인은 수박씨 모종을 직접 길러 농사짓는 일에 자긍심을 갖는다. '청운면 하우스수박 첫 재배'로 성공을 거둔 김 장인을 4일 그의 농장에서 만났다.

#연간 출하량 3000여통 지켜내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농사로 잔뼈가 굵은 김기호(60) 장인은 양평과 가까운 강원도 홍천이 고향이다. 어린 시절부터 농사일에 뛰어들어 이 농사 저 농사 안지어 본 것이 없다.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 하던 농사일을 도왔어요. 농사가 저한테 잘 맡더라고요. 주관대로 농사를 할 수 있는 역량이 생기면서부터 원예 농사로 눈을 돌렸습니다."

스무살 결혼과 동시에 양평 청운면에 터를 잡은 김 장인은 고추농사에 손을 댔다. 그 당시 양평 대부분의 농가에서는 쌀농사와 밭농사 등 곡물 위주의 농사를 짓고 있었다.

"청운면에 처음 왔을 때 만해도 곡물 농사가 많았어요. 채소 작물은 시장 동향에 따라 가격이 폭락하기도 하지만 값이 좋다보니 먹고 살기 위해 고추 농사를 지었죠."

그러나 채소 작물로 수익을 내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김 장인은 원예작물의 수익성이 높은 것을 보고, 남는 노지에 수박을 심기 시작해 7년 간 수박 수확량을 늘려가며 농사에 심혈을 기울였다.

"수박은 물량이 몰리면 가격 폭락이라는 위험 부담이 큰 작물이지만, 수확하는데 한 필지의 땅이 하루 이틀이면 끝나기 때문에 노동 강도가 고추보다 덜 했어요. 처음 심은 수박을 당시 150통이나 수확했는데, 쌀 한가마니의 3~4배 값을 받아 수익이 좋았습니다."

김 장인의 수박 농사 성공담이 마을에 전해지면서 곡물 위주의 농사를 짓던 청운면 농가들은 수박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수박 농사를 지으면서 이웃 농가에 남는 수박 모종을 나눠줬어요. 청운면이 수박 농사로 번창할 수 있도록 불씨를 지폈다고 생각하니 보람있습니다. 모닥불 역할을 한 거죠."

#청운면에 수박 바람을 일으키다

김 장인은 1991년 현재의 농사터를 매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수박 농사에 뛰어들었다. 자연재해에 취약한 노지재배 대신 하우스재배를 택했다. 1500평에 달하는 김 장인의 밭에는 20개의 하우스가 설치돼 있다. 이곳에서 1년간 출하되는 수박만 3600통에 달한다.

"초복부터 말복까지 한 달여 간 하우스 수박이 총 3번 출하됩니다. 병충해로 약 5% 정도가 제외되는데 매년 3000통 넘는 수박을 시장에 내놓고 있죠."

김 장인은 '연작'의 부작용을 피해 질 좋은 수박을 지속적으로 출하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하우스재배는 3년까지 무조건 잘됩니다. 이후에는 안 좋은 비료 성분들이 토양에 쌓이기 시작해 결함 있는 수박들이 나오죠. 이때부터 고전이 시작됩니다."

한 자리에서만 농사를 짓는 연작을 하게 되면 토양관리는 필수다. 이 때문에 김 장인은 출하를 완료한 하우스마다 메밀과 옥수수를 심어 토양을 중화시킨다. 또한 27년째 '자가 육묘'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어린모나 묘목을 직접 기르는 이 작업 과정을 통해 '내 밭'에 잘 맞는 품종을 골라 심어 수확하고 있다.

"이 지역에서 자가 육묘를 하는 곳은 전체 130여 농가 중 2곳 뿐이에요. 처음 수박 농사를 시작할 때부터 종자를 품종별로 정리해 모종을 관리해왔습니다. 어떤 품종을 썼는지 정확하게 알기 때문에 속을 일이 없죠. 한 해 동안 지을 농사인데 땅과 기후조건에 꼭 맞는 수박을 찾는 것이 당연하죠."

2000년 초에는 인근 지역에 육묘장(育苗場, 묘목이나 모를 기르는 장소)도 들어왔지만 김 장인의 고집은 꺾을 수 없었다. 그는 신품종이 나올 때면 미리 심어보고 농사를 진행하기 위해 품종별 테스트도 확실하게 거친다.

김 장인은 자가 육묘의 유리한 점으로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이 낮은 것을 꼽았다. 바이러스에 걸린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모종을 만들 때부터 소독을 철저히 해 한해 수박 농사를 망칠 정도의 큰 피해를 입은 적이 단 한번도 없다. 그는 튼튼한 수박을 만들기 위해 매년 모종 접목 작업도 직접 하고 있다.

#황금기 연 청운면 하우스 수박

수박농사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이 가득한 김 장인은 청운면 일대에 수박 농사 부흥을 이뤄냈다.
"제가 나눠준 모종으로 수박 농사를 시작하게 된 한 이웃(당시 수박작목반장)이 경기도에 지원금을 요청하기 위한 브리핑을 할 때 제가 생산한 수박을 들고 갔습니다. 수박의 상태와 맛 등을 확인한 경기도는 수박 작물에 대한 가능성을 보고 농사를 지원을 하기 시작했죠. 청운면 일대 수박 농가들의 황금기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경기도의 지원은 청운면 수박 재배 활성화에 크게 기여했다.
김 장인은 하우스 수박에 대한 전문성을 높이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종자회사 내 교육시설에서 열리는 연수에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1년에 1~2번씩 3박4일 동안 진행하는 연수를 다닌 것만 8년이다.

"새로운 농업 기술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배워 적용하려면 연수를 받아야 합니다. 사실 농사일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배움이 늘 부족하다고 생각해 항상 열심히 배웁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어느 새 장인이 된 그는 앞으로도 맛 좋은 하우스 수박을 길러낼 자신이 있다.

"나와 가족이 먹을 수박을 농사짓는다는 생각으로 정성드려 수박을 길러내고 있어요. 맛좋고 튼튼한 수박을 생산하는 청운면의 수박농부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안상아 기자 asa8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