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희 송도소식지 주민기자·시인

학연과 지연을 중요시해온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인가 인연의 미학을 파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목적을 위해 뭉치고 해체하기를 반복하며 사회적 병폐를 낳기도 한다. 사회적 단합과 화합을 위한 단체인지 집단의 이익을 위한 패거리인지 반문을 갖게 만드는 현상들이 넘쳐난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도 있어 왔다.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고 있다는 것은 본질적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물리적으로도, 구조적으로도 혼자 살아갈 수 없을뿐더러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도 사회를 형성하고 상호 의존해야 한다. 그 점이 각각의 단체를 만들게 하고 그로 인해 이해 충돌이 발생한다.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초점을 어디에 두고 어떤 마인드를 가져야 할 것인지는 모두의 숙제가 됐다.
개인의 목적과 이익, 사회의 목적과 이익도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서 현실은 갈등의 골을 깊게 만든다. 예전에는 인지상정으로, 때로는 대의를 위해서 개인의 자유나 권리가 억압되기도 했다. 과거에 비해 똑똑해진 우리들은 쉽게 양보하거나 굽히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순리적으로 합의점을 도출해 가는 과정보다는 가끔씩 법에 의지해 판단하려 한다. 한술 더 떠서 올바르지 못한 행위를 하고서도 법망을 피해가면 된다는 생각이 사회 저변에 확대되는 듯하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특히 지식인들의 사회적 양심이나 책임감도 부족하다. 많은 사람들은 현실적 조건과 만족을 위해 움직인다. 삶의 철학도 윤리적 가치관도 의식이 많이 결여된 느낌이다. 인간 본연의 모습이나 진리에 대한 성찰은 사치로 여겨질 때도 있다. 인류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공동의 화합보다는 집단 이기주의가 확산되는 실정이다. 무엇이 이토록 인간을 변하게 만들었을까. 답답함을 느낄 때도 많다.
세상을 한 번 크게 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얼마나 작으며, 일상에 허덕이는 우리의 존재는 얼마나 미미한가. 유유히 흘러가는 물처럼, 상황과 조건에 따라 순리대로 변해가는 자연처럼 세상을 바라본다면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고 살아가야 한다는 점은 상생에 본질이 있을 것이며 합리적인 공동체로 발전시키는데 기본적인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세상과 사회가 달라져야한다는 외침보다 개인 의식부터 달라지길 바라며 조화로운 사회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