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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청도 서풍받이 조각바위 언덕 전망대 (김성환, 2019)


'에게해 진주'로 불리는 산토리니를 유명하게 한 것은 세계 최고로 일컫는 석양 때문이다. 하루 종일 섬 투어를 마친 관광객들은 해질 녘이 되면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섬의 서북쪽 이아(Oia) 마을의 굴라스 성채(Goulas castle)로 몰려든다. 수천 명이 한꺼번에 몰려 자리다툼을 벌인다. 이들의 목적은 오로지 일몰을 보는 것이다. 이아의 선셋 포인트에 위치한 전망 좋은 카페를 이른 아침에 찾아가 꽤 많은 돈을 주고 저녁 자리를 찜했다. 해가 넘어가는 순간 이아 마을 언덕에 모인 수천 명의 인파가 박수를 쳤다. 누군가는 탄성을 지르고 누구는 키스도 서슴지 않았다. 평생 잊지 못할 가슴 벅찬 순간이었다.
지난 8월 말 옹진군 대청도를 찾았다. 온통 붉은 빛으로 하늘을 물들이며 넘어가는 석양을 보는 순간, 에게해 산토리니의 그 일몰이 떠올랐다. 대청도의 서남쪽 서풍받이의 조각바위 언덕 전망대에서 보는 낙조는 산토리니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아! 이 아름다운 석양을 우리만 바라보아야 하다니." 해가 넘어가는 순간 사방은 숨을 멈춘 듯 고요했다. 오직 셔터 소리만 정적을 깨는 듯 쉼없이 반복된다. 놓칠 수 없는 찰나를 담기 위해 나는 애써 숨을 참아야 했다.
조각바위 언덕의 거대한 병풍바위는 100m가 넘는 웅장한 자태를 순식간에 금빛으로 물들인다. 바위에 반사된 햇빛은 사방으로 번져 황홀함을 자아낸다. 순간 넋을 잃고 만다. "아! 그렇구나. 700년 전 중국 원나라 마지막 임금 순제가 유배를 와서 사색을 즐겼던 결정적 이유가 바로 이곳의 일몰 때문이었구나."
나는 또 꿈을 꾼다. 그리 멀지 않은 날, 세상의 곳곳에서 온 관광객들과 함께 아름다운 서풍받이의 일몰을 보기 위해 자리다툼을 하게 될 그날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