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 됐다고 '나'를 포기 마라
▲ 김진영 지음, 김영사, 260쪽, 1만3800원

"어머니, 며느리는 손님이에요. 제 남편이 저희 집에 가면 그렇듯이 저는 아드님보다 멀고 어려운 존재입니다. 어머님 댁에서 설거지 같은 건 제가 호의로 해드릴 수는 있지만 저한테 하라 마라 하실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때 나를 보시던 시부모님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화가 났다기보다 어안이 벙벙하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며느리는 '손님'이라고 말한 것은, 거한 대우나 대접을 받고 왕처럼 시댁에 군림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손님이 집에 방문했을 때 주인이 '남의 집'이라는 장소에 와서 낯설고 조심스러워하는 손님을 배려하여 편안히 지내게 해주려는 것처럼 며느리에게도 그저 손님 대하듯 배려하고 조심스러워야 함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다. ('며느리는 손님입니다' 중에서 61쪽)

이 책은 행복해지기 위해 결혼했는데 왜 나를 지키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결혼을 통한 행복이란 왜 그토록 꽁꽁 숨겨져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진, 결혼생활 부적격자였던 독립영화 'B급 며느리'의 주인공 김진영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살기 위해 B급 며느리의 삶을 선택하고 시어머니를 향해, 세상을 향해 할 말을 하며 자기 자신을 찾는 저자의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고분고분한 며느리를 원하는 것은 시어머니만의 소원이 아니다. 남편을 포함해 시댁의 모든 구성원들, 나아가 한국 사회는 며느리가 궂은일들을 묵묵히 참아내며 불편한 내색 없이 주어진 몫을 해내기를 원한다. 단지 시어머니는 도리라 칭하는 그 의무의 대변인이 되어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사람일 뿐이다. 때문에 고부갈등은 새로이 가족으로 엮인 모든 사람이 노력해야 하는 문제다.

중간의 선을 넘지 않으면 서로에게 화내지 않고 한자리에 있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던 지은이와 시어머니의 사이는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서로가 누구인지를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크게 실망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게 되었다. 각자 자신이 서 있는 곳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서서히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은 저자는 우리는 모두 각기 나름의 방식으로 모난 사람들이며, 관계를 맺는 것은 서로의 모난 것을 보듬어주는 과정임을 일깨워준다.

지은이 김진영은 2012년 고시공부를 그만두고 방황하던 중 덜컥 임신을 하고 영화감독 지망생인 호빈과 결혼을 했다. 다들 우려했던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시어른들에게 열심히 대들고 말았다. 남편 호빈이 그런 '이상한 아내'를 'B급 며느리'라는 영화로 만들어 온 세상에 공개하는 바람에 지금은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는 'B급 며느리'가 됐다. 며느리가 되기 위해 자신을 포기하지 말자는 신념을 실천함으로써 맘 편히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인형도 모으고, 8살 먹은 아들도 키우면서 나름대로 시부모님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