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와 '수탈' 함께 싣고 달려...공업화와 수출산단의 중심축
▲ 한국 최초의 철도는 인천과 서울을 잇는 경인선이다. 1899년 9월18일 개통한 경인선은 일제의 한반도 수탈이라는 오명도 있지만 인천 발전에 함께 발맞춰 달려 왔다. 16일 서울로 향하는 경인선 열차가 한국철도 최초 기공지 표지석이 위치한 도원역 인근을 지나고 있다.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1899년 9월18일 개통한 경인선. 제물포와 노량진을 오간 경인선은 '국내 최초 철도'라는 역사와 '일제의 한반도 수탈 첨병'이라는 오명을 함께 싣고 달렸다. 일제강점기 주안역은 대규모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을 공급하는 창구였고, 부평역은 일제 군수공장인 조병창을 비롯한 병참기지 통로였다.

인천 도시화의 바탕에는 언제나 철길이 있었다. 해방 이후 경인선은 인천 공업화의 축을 담당했다. 1960년대 접어들며 수출 주도의 산업화 정책으로 경인선을 따라 부평·주안 일대에 산업단지가 들어섰다. 철길 주변에는 유입되는 인구로 주거지가 형성됐다. 경인선 개통 66년 만인 1965년 9월18일에 이뤄진 인천~영등포 구간의 복선화, 1974년 전철 운행은 철도가 물류를 넘어 대중교통으로 탈바꿈한 시대적 변화를 보여준다.

경인선 중심의 도시화가 전환점을 맞은 건 1990년대였다. 이 무렵 연수구, 남동구, 계양구 등지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다. 이런 생활권의 변화에서도 철길은 주요한 요인이었다.

1999년 10월6일 계양구 박촌역과 연수구 동막역을 연결하는 인천도시철도 1호선이 개통됐다. 인천을 동서로 가로질렀던 경인선에 더해 남북을 오가는 철길이 탄생한 것이다. 한종학 인천연구원 연구위원은 당시 '황해문화' 1999년 겨울호에 기고한 글에서 "1호선은 인천이 대중교통 중심의 도시교통공간체계로 다가서는 첫발은 내디뎠다는 것에서 의의가 있다"며 "도시철도 개통은 남북 간 대중교통 통행 개선으로 도심 각 지역의 통합의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도심 확장으로 철길에 대한 요구도 커졌다. 2009년 1호선은 송도국제도시로 연장됐고, 2016년 7월30일에는 서구 검단오류역과 남동구 운연역을 잇는 2호선이 개통됐다. 2호선은 서구와 미추홀구 등지의 원도심을 지나며 균형발전 효과도 가져왔다. 지난 2017년 한국철도학회에 실린 '인천신규철도 개통에 따른 만족도 연구' 보고서를 보면 2호선 이용자 2053명 면접 조사에서 최종 목적지가 인천 내부인 비율이 92.2%에 달했다. 평균 통행 시간은 기존 45.5분에서 개통 후 30.2분으로 줄면서 만족도가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2007년 운행을 시작한 공항철도, 43년 만인 지난 2016년 재개통한 수인선 등으로 인천 철길은 뻗어나가고 있다. 16일 인천시 자료를 보면 인천 철도 연장은 올해 기준 139.28㎞에 이른다.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B), 제2경인전철 등의 신설 노선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관련기사 3면

다만 이들 노선과 서울7호선 연장선 등 적잖은 철길이 서울로 향한다는 점은 과제도 안기고 있다. 120년 전 경인선 개통으로 서울 종속성이 심해졌던 역사적 고리를 끊지 못한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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