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정 경기 수원청년지원센터장

 


내가 일곱 살이 되어서 부모님은 서로의 관계에 더는 책임을 다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혼한 부모로부터 분리되지 않기 위해 일곱 살 아이는 달라진 가족 체계를 판단하기보다는 모르는 척했다. 또한 비양육 부모로부터의 채워지지 않는 애정 욕구에 대한 스트레스를 보채기보다는 무덤덤하게 감정을 숨겼다. 또 가족 친지 모두는 달라진 생활형태에 대해 알려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상황에서 어떤 것도 궁금해하지 않는 적극적인 방관자로 남았다. 인지적으로 부모님의 이혼으로 인한 상실의 본질을 알고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상실을 거부하고 재결합에 대한 환상을 가졌던 것이다.

이혼은 아동을 포함한 가족 모두에게 부분적 상실이며 영원한 상실이다. 상실된 상대에 대한 수용과 자신의 존재에 대해 회복하는 시간이 가족 모두에게 필요하다. 보통 성인 남녀가 이혼 후 자신의 생활에 적응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길면 5년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녀의 경우는 부모와 다르게 평생 표현하지 못하고 감당해야 하는 개별적 고통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자녀에게 부모의 이혼은 한 부모와만 살아야 하는 예상하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변화이며 상당히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한 부모의 상실은 아동의 정서·인지적 능력에 지나친 부담이 되며 성격 형성에 상당한 영향을 준다. 때문에 아이의 인지 수준에 맞추어 이혼 시나 그 후에 어떤 일이 발생할 것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부모님의 갈등이 관찰될 때 입을 닫았고 못본 척 그리고 기억 못하는 척했다. 그리고 그때 부모님의 모습이 굉장히 위협적으로 느껴져서 서른 살이 될 때까지 같은 악몽을 꾸었고, 그 꿈은 부모님의 다툼을 말리지 못했던 죄책감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꿈을 꾸지 않는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이혼 후 엄마가 학교로 찾아오거나 내가 엄마를 몰래 찾아가 만나던 반가운 엄마가 어느 날 나를 반기지 않았고 좀처럼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엄마를 기다리고 미워하고를 반복하면서 자녀로서의 존재감이 꽤 고통스러웠다. 부모 자녀 관계의 친밀감이 떨어질 경우 자녀는 내면적 외면적 적응 문제를 더 많이 보이기 마련이다. 이혼으로 자녀에게 미안한 마음과 동시에 자녀의 마음을 감당하기에는 준비가 덜 되었다고 자녀와의 대화를 피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이면서 자녀도 외롭게 하는 것이다. 마음이 어떤 지 피하지 않고 물어봐주고 솔직하게 이해되는 만큼 공감해 주면서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아동의 슬픔과 분노를 수용하고 보듬어주는 정서적 버팀목의 역할은 이혼을 했어도 부·모로서 반드시 해야 한다.

부모와의 건강한 관계 형성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할 모델이 되는데 부모의 이혼으로 한쪽 부모가 떠나가면서 부모 자녀 관계는 붕괴되고, 애정과 안정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된다. 아동의 심리적 불안과 정신적 갈등 그리고 다양한 스트레스는 일상생활의 적응을 어렵게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 심리 내적 갈등을 조정하며 아이의 성격이 만들어져간다. 내 아이가 보채지 않는다고 괜찮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부모의 이혼에 더 잘 대처하는 성격도 연령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문에 현실을 분명하게 이야기하면서도 여전히 부모임을 설명하고 안심시킴으로써 자녀의 힘든 정서를 함께 나누며 건강한 성장을 도와야 한다.

요즘은 상황별로 양육 지침이 잘 정리되어 있다. 그러나 양육자가 고통받고 있는 상태에서는 본의 아니게 자녀에게 소홀할 수 있다. 소홀보다는 그때 그 표현은 그때의 최선일 수 있다. 나는 나이 40이 넘었고 아버지가 이혼한지도 34년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가끔 '아빠는 윤정이에게 늘 미안해'라고 말씀하신다. '아빠가 왜 미안해. 내가 아빠 원하는대로 자라주지 못해서 미안하지'라고 대답하지만 아빠와 나는 서로에게 더 친근하지 못했던 지난 시간을 아쉬워하는 것 같다. 아내 없이 여자아이를 키우느라 고생하셨던 내 아버지의 젊은 시절의 노고를 위로하고 싶고, 이혼을 결정할 때보다 더 많은 것들이 고려되고 준비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혼 가정에서 성장한 나는 언젠가 말하고 싶었다.

글을 적으면서 부모님의 결정을 따라가 봤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다시 이혼을 할 수도 있겠지만 얼마나 힘들게 서로를 떨어뜨려 놓으려고 애를 썼는지가 애처롭게 느껴졌다. 젊은 날 굽히기 싫은 감정 하나로 누구도 그토록 원하지 않은 이혼에 최대 노력을 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자녀로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