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이 너무도 없다 … 그의 '지도'만이 남았을 뿐
▲ '대동여지도' 중 인천·강화·김포 지역.

 

아! 어떻게 이정도로 자료가 없을까? 우리 역사상 최고, 최다 지리지를 편찬한 지리학자인 고산자 김정호, 그것도 겨우 150여년 전이다. 없어도 너무 없기에 다시 한 번 우리의 역사의식을 되돌아본다. 문득 연산군의 섬뜩한 저 말이 생각난다. <연산군일기>에 보이는 글줄을 다시 읽으며 이 글을 쓴다.

"임금이 두려워하는 것은 역사뿐이다. … 이제 이미 사관에게 임금의 일을 쓰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차라리 역사가 없는 게 더욱 낫다. 임금의 행사는 역사에 구애될 수 없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선생이 태어난 연대도 이승을 하직한 연대조차 모른다. 선생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어서다. 거의 없는 기록 몇에서 찾아낸 선생의 자취를 더듬어 본다.

선생의 자는 백원(伯元)·백원(百源)·백온(伯溫)·백지(伯之), 호는 고산자(古山子)를 썼다. 선생의 직업도 불분명하다. 실학자 겸 지리학자요 지도 제작가, 각수(刻手)인 것은 분명한데 소설가(?)라는 문헌도 있다. 또 '광우리 장수의 남편', 혹은 '군교(軍校) 다니는 집'이라 부르기도 한 것을 보면 선생은 잔반계층이나 중인층으로 미천한 신분이었던 듯하다.

문헌에 따라 이름도 정호(正浩)와 정호(正)로 다르다. 본관이 청도(淸道)라 하나 족보 어디에도 선생에 대한 기록은 없다. 태어난 곳은 황해도 봉산(鳳山) 또는 토산(兎山)이라하고 언제 서울로 왔는지는 모르나 도성 숭례문 밖의 만리재나 약현(현재 중림동) 부근에 살았다는 설이 유력하다. 일설에 외딸이 있다고 하나 확인할 방법은 없고 정인보의 <고산자의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아들이 있었던 듯하다.

선생에 대한 기록은 <청구도>에 수록된 최한기의 '청구도제(靑邱圖題)',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수록된 '만국경위지구도변증설(萬國經緯地球圖辨證說)'과 '지지변증설(地志辨證說)', 신헌의 <금당초고(琴堂初槁)>에 수록된 '대동방여도서(大東方輿圖序)', 유재건의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 수록된 '김고산정호(金古山正浩)', 그리고 일제하 <조선어독본>, 정인보의 <고산자의 대동여지도>에 산재해 약간 남아있다.

그 대략을 따라 잡으면 이렇다.
31세 경인 1834년 이전부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시문(詩文)·인물 등을 제외한 내용을 큰 글씨로 적고 다른 자료를 참고하여 여백이나 첨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교정·첨가한 <동여편고(東輿便攷)> 2책(1책 결본)을 편찬.
1834년 <청구도> 2첩을 완성. 최한기의 부탁으로 보급용의 중형 낱장본 지도로 판각한 서양식 세계지도인 <지구전후도(地球前後圖)> 편찬.
37세 경인 1840년 후반까지 3차에 걸쳐 개정판 <청구도>를 제작하였다. 한양 지도인 목판본 <수선전도(首善全圖)>, 전통식과 서양식이 결합된 세계지도인 <여지전도(輿地全圖)> 편찬.
1834~1850년까지 <동여도지(東輿圖志)>3책(경기·강원·황해)을 편찬하기 시작하였지만 완성을 보지 못하고 포기한다.
50세 경인 1853~1856년에 <여도비지(輿圖備志)> 20책을 최성환(崔煥)과 함께 편찬.
1856~1859년 기본 내용을 완전히 개정한 필사본 <동여도> 23첩 편찬.
54세 경인 1857년에 전국 채색 지도인 <동여도> 편찬.
1860년 목판본 <대동여지도> 22첩이 너무 커서 한눈에 조선 전체를 보기 어려운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목판본 <대동여지전도(大東輿地全圖)> 교간(校刊).
1861년에 <대동여지도> 22첩을 완성하여 교정 간행. <동여도지>에 서문을 작성하여 수록.

58세 경인 1861~1866년 3월경까지 <대동지지(大東地志)> 32권 15책을 편찬하다 미완으로 남겼다. <대동지지> 권1에 고종이 민비를 맞았다는 "중궁전하는 민씨이며 본적은 여주이고 부원군 민치록의 딸(中宮殿下閔氏 籍驪州 府院君致祿女)"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 해가 1866년 3월이다. 선생의 생존 근거는 여기까지가 마지막이다. 이후 현재까지 선생의 졸년을 찾을 수 있는 문헌은 없다. 이때의 나이가 63세경이 아닐까 한다. 기록이 있다 하더라도 선생의 삶은 선생이 남긴 지도만큼 풍성치는 못할 듯하다. 선생이 간 길을 아픈 마음으로 독(讀)한다.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