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문종 수원2049시민연구소장


한 범죄자의 말이 전 국민의 주목을 받고 널리 회자된 적이 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사회적 격차가 점점 심화되는 시대 흐름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 말은 계속될 것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과거의 추억이어야 한다. 오늘날 민주주의와 자치시대를 누리게 된 여정에 부끄럽게 묻어 있는 역사의 흔적이어야 한다. 재산은 각자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가는 수단일 뿐이다. 모든 시민은 재산 유무나 그 크기에 따라 기본권을 행사함에 있어 차별을 받아서는 안 된다.
인천과 경기도의 자치단체 대부분은 세계인권선언을 바탕으로 '인권기본조례'를 제정, 운용하고 있다. 인권기본조례가 있는 도시의 어느 시민도 경제적 능력에 따라 자치단체의 정책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권리를 제한받는 일이 없어야 한다.

물론 인권기본조례가 없는 도시라고 이런 차별이 정당화돼서도 안 될 것이다. 자치와 시민의 도시를 지향하는 자치단체라면 반드시 이러한 경제적 차별을 해결해야 한다.
자치단체마다 인권기본조례에 대한 표현의 차이는 있겠지만 시민의 인권 보장과 참여를 규정하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모든 시민은 인간으로서의 모든 자유와 권리를 향유하며 인권은 이 조례가 확인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 시민은 인권을 존중하는 지역사회를 실현하는 주체로서 시의 정책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고 기술하고 있다.

최근 여러 자치단체에서 주민자치회 전환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아직 구체적으로 전환 사업을 추진하지 않지만, 전환 사업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자치단체 또한 적지 않다. 주민자치회가 시대의 흐름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주민자치회 전환 사업이 시작되면서 재산에 따라 권리가 제한되는 일이 생기고 있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주민자치 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차별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주민자치회 회비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혹자는 인권이라는 잣대를 과도하게 해석한다고 타박할 수도 있다. 침소봉대, 나무를 보지 못하고 자잘한 가지에만 매달리는 소인배라고 수근거릴 수도 있다.

하지만 주민자치회가 시작되면서 위원들에게 월 회비를 책정해 의무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주민자치회 전환 이전에도 주민자치위원회 회비문제는 정기적으로 논란이 되어 왔다.
새로 위원회를 구성할 때마다 회비 규정과 회비의 규모, 납부 방식 등을 두고 토론이 있어 왔지만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하고 묻혀 왔다.
주민자치라는 시대 흐름에 맞추어 주민자치회를 시작한다면 이참에 주민자치회 회비를 없애야 한다. 자치활동을 위해 필요한 예산은 자치단체에서 지원하고, 참여하는 주민은 회비 부담을 버리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민자치회 활동을 활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 재정이 필요하다. 마을활동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예산을 마련해야 하고 자치위원이라면 앞장서서 기부하려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치회가 돌아가고 마을 일이 활성화된다. 하지만 매월 일정 액수를 회비로 정하고 그 의무를 다해야만 자치위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면 회비 납부가 버거운 사람은 마을 일에 나서지 못할 수 있다. 마을 활동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주민자치회 참여부터 경제적 능력에 따라 차별을 받는다면 어떤 일에 자유롭게 나설 수 있을까.
시민 누구도 이것저것 요구만하거나 권한만 달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책을 제안하고, 자치단체에서 도입하기를 요구하면 그에 따르는 자신의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참여하려는 주민은 권한이 주어지면 그만큼 책임을 지려고 하는 민주시민이다.

그런 시민에게 자치회 참여를 위해 월 회비를 책정해 의무를 지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 주민자치회뿐만이 아니라 공익을 위해 참여하는 어떤 과정에서도 회비나 경제적 능력이 부담으로 작용해서는 안 된다. 주민자치회 회비를 없애자는 제안은 더 많은 시민이 자유롭게 공동체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자는 주장이다.

참여에 따르는 의무와 관련하여 그 내용과 범위를 숙의를 통해 공론화해보길 제안한다. 현재 시민이 생각할 수 있는 몇 가지 안을 갖고 토론을 통해 자치회 위원 회비 등을 결정하는 방법이다. 물론 회비 0원부터 시작해 상징적인 금액 1000원, 1만원 등을 설정하기 위해 함께 판단해 보는 것이다. 토론과 합의의 과정에서 성숙한 시민의식이 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