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쪽으로 10년 … 강태공에 '묵직한 손맛' 보여주다
▲ 낚시의 참맛은 손맛이라고 한다. 그 손맛은 '대나무 낚싯대'라야 가능하다는 송용운(53) 장인이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성철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학창시절 책가방 대신 챙긴 '낚시가방'
강가서 밤새 아침마다 부친 찾으러와
형편 넉넉지 못해 낚싯대 만들기 시작

"배우고 싶습니다" 무작정 찾아간 장인
故 방기섭 낚싯대 제작 비법 전수받아
안성 '용운공방' 열어 … 끊임없는 연구

생활고도 이긴 '사명감' … 뒤따라온 명성
탄성·복원력 극대화 '6합 죽간' 개발
러시아 푸틴 대통령 선물로도 선정돼


낚시의 참맛은 손맛이라고 한다. 감탄 수준의 손맛을 보려면 '대나무 낚싯대'라야 가능하다는 얘기가 있다. 대나무 낚싯대의 휨새와 손맛을 따라가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 대나무 낚싯대의 맥을 이어온 송용운(53) 장인은 대 낚싯대를 만드는 데 일생을 바치기로 마음먹었다. 송 장인을 13일 안성에 있는 그의 공방에서 만났다.

#낚시는 유일한 삶의 낙(樂)

예로부터 낚시는 선조들의 풍류문화였다. 태초 인류의 고유활동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낚시는 현대인들에게도 인기 레저 활동이 됐다. 이는 송용운 장인이 대나무 낚싯대를 계승하기로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이 고향인 송 장인은 성남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등교할 때면 늘 그의 자전거에는 책가방 대신 낚시 가방이 실려있었다. 토요일에는 낚시 가방만 가지고 학교로 가서 강가에서 밤낚시를 즐기기 일쑤였고, 날이 밝아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어릴 때부터 워낙 부수고 만드는 걸 좋아해서 라디오나 시계 등이 성한 것이 없었어요. 대나무를 가지고 낚싯대를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죠. 직접 만든 낚싯대를 가지고 주말 내내 밤낚시를 즐겼는데, 다음날이면 아버지가 강가로 저를 찾으러왔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낚시를 배운 송 장인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부터 대나무만 보면 직접 낚싯대를 만들었다. 당시 낚싯대를 구입하려면 값이 꽤 나갔기 때문에 가게에서 판매하려고 내놓은 낚싯대들을 보면서 대강 만들었던 것이 전부다.

낚시에 푹 빠져 살던 송 장인은 고등학교 3학년 때 갑자기 어려워진 집안 형편으로 학교를 그만두게 됐다. 이후 동네 지인의 소개로 고가구(古家具) 제작소에 들어가 3년 간 일을 했다.
"아는 분의 소개로 들어간 제작소에서 소목 등 가구제작 방법들을 배웠어요. 대패를 다루는 법부터 기계를 쓰는 법까지, 그곳에서 나무의 성질을 이해하고 기초적인 것들을 배웠지요. 대나무도 나무의 일종이었기 때문에 고가구 제작 작업을 하면서 아주 무관하지는 않았습니다."

#오랜 전통의 맥을 잇다

송 장인은 이후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들어가 무역학을 전공했다. 당시 옻칠, 자개 등을 입힌 전통 가구들이 일본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는 고가구를 직접 제작한 경험을 살려 전통 가구를 일본으로 수출하는 일을 했다.

"고가구 무역 일을 하면서 취미인 낚시도 계속 했죠. 여전히 대나무로 낚싯대를 만들었고요. 어느 날 일본 바이어들과 낚시를 즐길 일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에도 대나무 낚싯대를 만드는 장인이 있느냐고 묻더군요. 대 낚싯대를 쓰는 것에 자부심이 엄청 났어요. 그때 마음 속으로 우리나라 전통 대나무 낚싯대에 대한 묵직한 무언가가 느껴졌지요."

송 장인은 2000년쯤 자신이 직접 만든 대나무 낚싯대를 들고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낚시 관련 행사장에 방문했다.

당시 우리나라 전통 대나무 낚싯대 명인인 고(故) 방기섭 명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방 명인은 '승작(昇作)'이라는 이름의 전통 대나무 낚싯대를 만들었는데, 이는 송 장인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줬다.
"대나무 낚싯대를 제대로 만드는 법을 배워본 일이 없었어요. 당시 방 선생님이 만든 '승작'을 보고 대 낚싯대를 만들고 있었지요. 마침 행사에 참여 중인 방 선생님을 찾아가 직접 만든 대 낚싯대를 보여드리고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는 이 인연을 시작으로 시간이 날 때면 짬짬이 방 명인이 살고 있던 순천으로 내려갔다. 방 명인이 작고한 2006년까지 1년에 서너 차례정도 만남을 이어가며 대나무 낚싯대 제작 비법을 전수받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용운작'도 내놨다.

"방 명인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안타까웠습니다. 다행히 아드님이 가업으로 물려받아 대나무 낚싯대를 만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2년이 지난 뒤에 생활고로 그만뒀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우리나라 전통 대 낚싯대의 명맥이 끊어진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었어요. 오랜 고민 끝에 순천에 있는 방 선생님의 가족들에게 동의를 구하고, 집사람을 설득해 공방 일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명성을 떨친 전통 대 낚싯대

송 장인은 죽마고우의 도움으로 안성에 지금의 '용운공방'을 열었다. 공방 운영 초기, 판매보다는 지인들에게 대나무 낚싯대를 선물하는 일이 더 많았다. 돈을 받고 대나무 낚싯대를 판매하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걸렸다. 이후 송 장인은 끊임없이 대나무를 쪼개어 깎고 구우며 낚싯대를 제작, 긴 노력 끝에 자신만의 기술로 4합, 6합 초릿대를 각각 개발했다.

"(대 낚싯대의)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초릿대였어요. 낚싯대의 가장 얇은 부분인데, 전통기법으로 만든 대 낚싯대는 대나무 하나를 쪽 내서 쓰는 거라 잘 부러졌어요. 휨새에 따라 사용자의 선호도가 달랐기 때문에 부드러운 휨새와 단단한 휨새의 낚싯대를 각각 만들어 단점을 보완했습니다."
송 장인은 대나무가 잘 부러지지 않도록 마디배열을 달리하는 등의 전통기법을 발전시켜 대 낚싯대의 탄성과 복원력을 높인 획기적인 '6합 죽간'을 개발했다.

그의 대나무 낚싯대는 2017년 한·러 정상회담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선물로도 전달되며 명성을 떨쳤다. 우리나라 전통 대 낚싯대의 명맥을 잇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버텨온 10년의 세월 끝에 맺은 결실이다.

"당시 공모전에 출품해 특별상을 받은 대 낚싯대가 있었는데, 그 수상 내력을 보고 연락이 왔어요. 그 때가 공방을 운영한 지 꼭 10년이었죠. 가야할 길이 막막해 다른 일을 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던 때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죠."

그는 올 4월 안성시로부터 '안성맞춤명장'으로 선정됐다. 그러나 여전히 먹고 살 길이 막막하다. 현재 운영 중인 공방을 연말까지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다.

"사실 전통 문화아이템은 소명의식이나 확고함 없이는 이어가기 힘든 일입니다. 찾는 이들이 거의 없어 많은 전통문화예술인들이 생활고에 시달리죠. 안정적인 곳에서 전통 대 낚싯대 제작 전수에만 몰두하고 싶습니다. 더 이상 우리 전통 문화가 설 자리를 잃지 않도록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김태호·안상아 기자 thkim@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