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위원

지난 주말, 가는 여름이 아쉬운 듯 막바지 피서행렬이 이어졌다. 경기도의 경우 양주 송추계곡이나 포천 백운계곡 등에 피서객이 많았다고 한다. 언뜻 이재명 경기도 지사의 '계곡 청소'가 떠올랐다. 이제 그곳 계곡들에는 억울한 자릿세나 7∼8만원짜리 닭볶음탕들이 자취를 감췄을까. 해마다 한여름철 피서 나들이에 빠지지 않는 것이 자릿세나 바가지 요금 아닌가.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은 동해안의 대표적인 피서 명소다. 그런데 올 여름 이곳 피서객이 지난해보다 51만명이나 줄었다고 한다. 바가지 요금에 대한 원성이 높았다고 한다. 4인실 펜션(방 1개) 하루 숙박료가 33만원. 바비큐 비용 8만원까지 41만원을 내고 나니 "정이 뚝 떨어지더라"는 후기다. 식당에서 또 바가지를 써야 했다. "그돈이면 동남아 휴양지 가고도 남겠다"는 얘기들이 넘친다.

▶계곡은 서민들이 즐겨찾는 피서지다. 한국인들에게 계곡 물놀이는 하나의 '풍류'다. 아마도 사찰들이 계곡을 따라 깊은 산중에 자리잡은 삼국시대부터일 것이다. 돌아보면 1970년대 대학가의 MT도 경춘선을 따라 마석이나 대성리 등의 계곡을 찾아갔다. 1980년대 송추계곡은 예비군들의 일탈 장소이기도 했다. 예비군 훈련 군기가 좀 물렀던 시절이다. 교관에게는 적당히 핑계대고 훈련장을 빠져나온 예비군들은 인근 송추계곡으로 숨어든다. 닭볶음탕을 시키고는 당시 국민 레저인 고스톱 삼매경에 빠져든다. 오후 5시쯤 나타나 '훈련 필' 도장을 받아내면 예비군 최고의 무용담이 되곤 했다.

▶옛 그림에도 나오는 계곡 피서는 대개 이렇다. 하인들은 음식을 준비하고 양반들은 술잔을 놓고 시를 읊는다. 서민들은 계곡물에 수박을 띄우고 아이들은 물장난에, 어른들은 천렵에 나선다. 그러나 산업화 이후부터는 풍속도가 좀 달라진다. 좀 괜찮은 계곡마다 평상과 그늘막을 차린 무허가 식당들이 주인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서민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자릿세를 바치거나 바가지 음식값을 감수해야 계곡물에 발이라도 적실 수 있었다.

▶'공정'을 도정의 한 축으로 삼는 이재명 경기지사가 칼을 빼들었다. 이른바 '경기도 계곡청소'다. 지난 주말에도 경기도 장흥의 계곡들을 찾아 불법영업 철거를 독려했다. "단번에 몰아내면 살 길이 없어진다"는 상인들에게는 "내게 화를 내도, 멱살을 잡아도 좋다"고 했다. 본래 시민의 계곡을 시민들에게 되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시정이 안되면 담당 공무원이 상인들과 유착된 것으로 보고 수사의뢰하겠다는 정도다. 시장이든 군수든 '표 되는' 일이 아니면 나몰라라 하는 요즘인지라 더욱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