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 국방부에 1975년 방위병 총기사건 재조사 의견 표명
'탕탕탕탕'

1975년 5월30일 새벽, 갑작스런 총성이 인천 옹진군 덕적도의 적막을 갈랐다. 집에서 가족들과 잠을 자던 당시 13살 최명석(57)씨는 총소리에 놀라 일어났다. 그 순간 총알 한 발이 그의 복부를 관통했다. 40대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미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가정집에 침입해 군용 총을 난사했던 괴한은 최씨가 다리 건너 아는 동네 형이었다. 23살이던 방위병이 자신보다 5살 어린 최씨의 누나를 짝사랑했는데, 최씨 부모가 결혼을 반대하자 불만을 품고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한 것이다. 다행히 집안에 있던 누나와 남동생 2명(6·9세)은 총상을 입지 않았다. 뱃일을 나갔던 형(20)도 화를 면했다. 일가족에게 총질을 해댔던 방위병은 조금 떨어진 주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최씨의 복부엔 큰 상처가 남았다. 더 가슴 아픈 일은 어린 자녀들이 부모를 영원히 볼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졸지에 고아가 된 4남1녀는 뿔뿔이 흩어져 식모살이를 하거나 친척집에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44년간 사건의 실체적 진실도 모른 채 고통과 아픔을 겪어왔던 최씨는 지난해 6월 용기를 내기로 했다. 사건이 발생했던 1970년대는 유신체제·군사정권 시기여서 하소연할 데가 없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았다.

그가 도움을 요청한 곳은 국민권익위원회였다. 최씨의 억울함을 듣고 사건을 조사한 권익위는 20일 보도자료를 내고 '1975년 덕적도에서 발생한 방위병의 총기 난사 사건을 재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국방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총기 관리 부실 등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실제 당시 해군 헌병대는 방위병이 목숨을 끊자 불기소 의견으로 군 검찰에 송치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이 사건으로 처벌받은 군 지휘관은 아무도 없었다.

권근상 권익위 고충처리국장은 "수십 년 전 군인의 불법 행위로 국민이 억울하게 피해를 입었다면 국가가 이를 배상하고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객관적인 재조사가 이뤄져 진실이 규명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명석씨는 "그 사건을 평생 가슴에 담아 두고 산다.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다"면서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한 마음이 들어 권익위에 도움을 요청했다. 진실이 제대로 밝혀질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하소연했다.

/박범준 기자 parkbj2@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