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창희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일 관계가 요동치고 있다. 일본의 날선 행보가 심상치 않다. 아베 수상의 뒤에서 한일 갈등을 부추겨 한국 사회의 반일 무드를 평화헌법 개정 불쏘시개로 쓰려는 세력이 있다는 음모론마저 돌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에 기습을 당한 우리 국민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전국적으로 불붙고 있다.

그런데 정작 불매할 것은 그냥 두고 변죽만 울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극우단체 '일본회의'가 유포하고 있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의 변종을 일부 한국 사학계가 생각 없이 수입하고 있다는 경종이다. 삼국시대 가야가 '임나라는 일본의 세력 투사 거점이었다'는 주장은 조선총독부 관변학자들이 날조한 학설이다.

아베의 극우 후원자들은 식민통치기관이라는 임나일본부의 한반도 지배설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변종 침략 논리의 수입부터 중지하는 것이 순리다. 일본 식민사학의 허구만 폭로해도 일본 시민사회에 파시즘의 잔재가 설 곳이 사라진다. 일본 국민들이 더 이상 정한론의 나팔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될 것이다. 양국 우의를 회복하고 미래지향적 관계 건설의 초석이 세워진다.

한국의 일부 사학계가 일본산 가야 연구의 족쇄를 벗지 못하는 사이, 북한은 한반도에 임나가 없었다고 일찍 정리했다. 이덕일 교수에 의하면 북한 사학자 김석형과 그의 제자 조희승이 보기에 한국의 일부 사학계는 여전히 식민사학의 유령이 지배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몇몇 학자들이 임나일본부설의 부활을 방조하는 바람에 일본에 역사수정주의라는 제국주의의 망령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아닐까.

한국에 시비를 걸어 미래 먹거리를 견제하려는 일본 우익의 역사관 근저에 임나일본부설이 똬리를 틀고 있다. 무덤에서 살아난 '가야=임나'라는 19세기 주장만 잠재워도 우익단체의 기세를 한풀 꺾을 수 있다. 양국이 치킨게임을 계속하면 300조원의 상호 손실이 발생한다는 경고도 있다. 불필요한 출혈 경쟁을 멈추고, 그 돈을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경제공동체 구축에 쓸 수는 없을까.

대통령이 남북 경제 협력을 잘하면 일본을 이길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야권은 당장 부품 소재 수급이 절실한데 먼 산 바라보는 한가한 대책만 내놓는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대응 실탄이 충분하지 않은 모양이다. 꼬일 대로 꼬인 한일관계를 푸는 열쇠 중에 남북역사 교류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바로 왜곡된 일본 극우 역사관을 해체하기 위한 순수한 남북 학술 교류이다.

인천의 중심 대학 관련 학과와 학생들이 이런 상황을 내다보기라도 한 듯이 2년 전부터 인천-개성 역사 교류를 준비해 왔다. 학생들의 자치 행사에 이덕일 박사와 외교부 유엔과장을 초청하여 구체적인 자문을 받기도 했다. 인천시도 관심을 갖고 행정 지원을 검토 중이다.

아베 총리가 가장 존경한다는 사람이 19세기의 병법가 요시다 쇼인이다. 이토 히로부미의 스승이기도 하다. <일본서기>에 나오는 신공황후의 신라 정벌과 임나일본부 이야기에 심취했던 인물이다. 일본의 한국 때리기의 사상적 근원인 임나일본부설을 무너트리면 일본 극우에 대한 심리전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경로의존 이론에 의하면 첫 단추를 잘못 끼면 계속 패배하게 되어 있다. 첫 단추인 역사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이유다. 일본회의의 왜곡된 역사관은 일본 고고학계에서도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그토록 받드는 아키히토 천황(일왕)의 평화주의 사상도 자기들 개헌 로드맵에 한낱 걸림돌에 불과할 뿐이다. 종교적 신념에 사로잡혀 일본을 신국(神國)이라고 믿는 극소수 국수주의자들의 잔치일 뿐이다.

문제는 일본의 우익사관에 동조하는 국내 학자들이다. 북한 역사학이 정치적인 평양 성역화 논리에 매몰되어 고대사 연구에 일부 객관성을 상실한 점은 아쉽다. 그래도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연구만큼은 앞서 있다는 평가도 있다. 남북 역사 교류를 인천이 주도하여 왜곡된 역사관의 교정에 일조하기를 기대해 본다.

/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