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취임 100일을 맞이한 진영 행안부장관은 기초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앞으로 기초자치단체는 중앙정치로부터 연결을 끊고 지역주민과 고민하면서 스스로 꾸려가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지방의회까지 장악하려는 것은 지방분권시대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 지방자치의 주무부처인 행안부가 지방선거 정당공천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입장을 낸 적은 없었다. 이 점에서 진 장관의 발언은 매우 돋보인다. 행안부는 중앙정부 내에서 지방정부를 대변하고, 지방정부에 대해서는 중앙정부를 대변하는 이중적인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동안 행안부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치중하여 왔다. 행안부의 존재 이유가 의문시되고 있다. 행안부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지방정부가 주민의 생활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되지 못하고 중앙정부의 하청기관으로 전락한 데에는 행안부의 책임이 크다. 마침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 심의를 앞두고 있다. 핵심적인 내용은 빠져 있고, 방향도 잘못되어 있어 별로 건질 것이 없는 '맹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진 장관이 정당공천제의 폐지라도 실현시키면 지방정치 발전에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이다. 행안부도 존재 이유를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지방의원이나 기초단체장의 후보자 공천을 통해 지방정치를 장악하고 있다. 국회의원은 갑이 되고 지방정치인은 을이 된다. 정당공천제가 국회의원 '갑질'의 발판이 된다. 지방정치의 자율성은 훼손되고 지방정치는 철저하게 중앙정치에 종속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당공천을 둘러싼 부패문제도 심각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지방정치 생태계의 파괴이다. 지역발전과 주민을 위해 열심히 일한 지방정치인은 공천에서 배제되고,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개인적 충성을 다해야 공천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주민의 복리와 지역발전은 뒷전이 된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공천 제도를 통해서 지방의 영주가 된다. 지역구 국회의원은 국가전체를 위한 의정활동은 뒷전이고, 지방정치인을 장악해서 지방정치에 치중한다. 이로 인해 지방정치는 파괴되고, 중앙정치도 망가진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60% 내지 70%에 달하는 국민이 기초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폐지해야한다는 주장을 지지하고 있다.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는 주요 정당의 대통령후보자들이 모두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했다. 선거가 끝나자 정당들은 뚜렷한 근거나 이유도 없이 정당공천폐지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 중앙 정치권은 지방선거 정당공천을 통해 지방을 식민지화하고 있다. 지방정치의 자율성과 책임성은 거의 실종되고, 중앙의 정쟁이 지방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공천권을 사유화하고 있다. 주민과 지역발전을 위한 지방정치가 본래의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기초지방선거에서 정당공천을 반드시 폐기해야 한다. 문제는 국회의원들이 공천 특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데 있다. 마침 국회의원선거가 임박해 있다. 4년에 단 한번 국민이 주권자로 지위를 회복하는 시점이다. 국회의원 선거전에 국회의원이 스스로 특권을 포기하는 정당공천을 폐지하는 법률을 통과시키고 국민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정당공천 폐지를 주장만 할 것이 아니라 정당공천 폐지를 위한 법률개정안을 정부 입법으로 발의하고 국회 통과를 위해 부처의 사활을 걸어야 한다. 국민들은 지방도 망치고 국가도 망치는 정당공천제 폐지를 위해 현역 국회의원이 어떤 노력을 했는 지를 감시하고, 그 결과를 국회의원 선거에 반영해야 한다. 국회의원과 국회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위험수위를 넘었다. 다른 나라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은 국회에 대한 신뢰도가 15%에 불과하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여론조사기관에서는 국민의 1.8%만이 국회와 국회의원을 신뢰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국회의원이 각종 특권에 취해 할 일을 하지 않은 결과다. 이번 총선에서 대폭적인 물갈이가 예상된다. 국민들은 국회의원의 특권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특권 폐지는 지방선거 공천특권의 폐지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선거에서 공약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국민들은 더 이상 속지 않는다. 그동안 수많은 정치인들이 정당공천 폐지를 공약하고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역 국회의원들은 지방선거 정당공천을 금지하도록 법률을 먼저 개정하고 그 실적에 따라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