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겨듣자, 세계 평화 외치는 지도자라면
▲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심기도설(心器圖說)> 중 '서가도(書架圖)'. <심기도설>은 기계 일반에 관한 책으로 그림을 그려 설명하고 있다. '서가도'는 책을 얹어두는 선반인데 매우 흥미롭다.

선생은 <추측록> 서에서 "하늘을 이어받아 이루어진 것이 인간의 본성[性]이고, 이 본성을 따라 익히는 것이 미룸[推]이며, 미룬 것으로 바르게 재는 것이 헤아림[測]이다. 미룸과 헤아림은 예부터 모든 사람들이 함께 말미암는 대도(大道)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경험을 통한 자기 생각 확장이요, 이 과정이 바로 추측이다. 선생은 <추측록> '추측제강(推測提綱)'에서 "물건을 씹어서 맛을 가리는 것은 미루어서 헤아리는 것이고, 조화해서 맛을 내는 것은 헤아려서 미루는 것이며 글을 읽어서 뜻을 아는 것은 미루어서 헤아리는 것이고 글을 지어서 말에 통달하는 것은 헤아려서 미룸이다" 하였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그 5단계 추측 방법을 제시하였다.

① 추기측리(推氣測理): 기를 바탕으로 미루어 이를 추측하는 것.
② 추정측성(推情測性): 정의 나타남을 미루어 성을 알아내는 것.
③ 추동측정(推動測靜): 움직임을 미루어 머무름을 알아내는 것.
④ 추기측인(推己測人): 자기 자신을 미루어 남을 알아보는 것.
⑤ 추물측사(推物測事): 사물 보는 것을 미루어 일을 짐작하는 것.

이제 선생의 <기학>을 보겠다.
<기학>은 2권 1책이다. 1권은 서문과 100개의 문단, 2권은 125개 문단과 혜강의 장남인 병대가 쓴 발문이 있다. 선생은 <기학> '서'에서 "무릇 기의 본성은 원래가 활동운화하는 물건이다.(夫氣之性 元是活動運化之物)"라 명백히 밝혔다. 그리고 우주는 이 기로 꽉 차있다고 하였다.

선생은 기(氣)의 본성을 '활동운화' 단 넉 자로 정리하지만 그 의미는 다대하다. 지금까지 구구히 내려오는 이(理)와 기(氣)에 대한 명쾌한 정리이기에 그렇다. 여기서 활(活)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생명성이고 동(動)은 진작(振作)시키는 운동성이고 운(運)은 주선(周旋)이란 순환성이요, 화(化)는 변통(變通)이라는 변화성이다. 그래 만단변화가 모두 기가 쌓여 서로 밀고 당기면서 질서정연하게 운행하는 거라는 인식이다. 이 세상이 이 기의 활동에 의해 스스로 창조되었다는 우주 창조론이다. 선생은 "이 우주에는 오직 이 기만 있다고 믿는다(方信宇宙 惟有此氣)"고 단언한다. 그렇기에 선생은 천하에 형체 없는 사물은 없다는 '무무(無無, 없는 것은 없다)'론을 편다.

선생은 이 기를 '형질(形質)의 기'와 '운화(運化)의 기'로 나누었다. 선생은 <기학>권1-6에서 '형질의 기는 우리가 쉽게 볼 수 있는 지구, 달, 태양, 별과 형체가 있는 만물이다. 비와 갬, 바람과 구름, 추위와 더위, 건조하고 습함 등은 사람이 보기 어려운 운화의 기라 한다. 또 형질의 기는 운화의 기로 말미암아 모여 이루어진 것이니 큰 것은 장구하고 작은 것은 곧 흩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형질의 기는 보고, 듣고, 맛보고, 만질 수 있으나 운화의 기는 감각으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못 본다고 하였다.

선생은 이렇듯 세상을 생동하는 기의 집적체로 보았기에 모든 것은 살아 움직인다고 인식하였다. 따라서 '가정운화'니 '학문운화' 따위 표현도 거리낌 없이 사용하였다. 사실 선생의 글을 조곤조곤 따질 것도 없이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인간도 포함)은 끊임없이 생성, 성장, 소멸하는 변화 속에 존재한다. 단 한 개의 사물도 생성된 것은 반드시 소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학의 학(學)은 무엇인가? 선생은 '선각자가 깨우친 것을 아직 깨닫지 못한 자에게 가르치면 배우는 자는 자기가 배운 것을 생업으로 삼는다. 살아가면서 이것을 뒷사람에게 전승하게 되는데, 이것을 일컬어 '학'이라 하였다. 그러고는 예로부터 내려온 학을 셋으로 분류한다. 첫째가 백성의 삶에 보탬이 되는 학, 둘째가 백성의 일에 해로움이 되는 학, 셋째가 백성의 도리에 아무런 손해나 이익이 없는 학이다. 이 학을 가르는 기준은 허를 버리고 실을 취하는 '사허취실(捨虛取實)'이다.

선생은 물론 첫째가 진정한 학이고 <기학>이 여기에 속한다고 하였다. 이는 인문, 사회, 자연을 아우르는 통합학문적인 성격이다. 선생은 이를 '일통학문(一統學問)'이라 명명하였다. 이 일통학문이야말로 세계 평화를 외치는 지도자들이라면 새겨들을 만한 이상세계를 구현하는 거대담론이다. (다음 회로 이어진다.)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