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발견] 3대째 수원왕갈비맛 이어온 이광문
[장인의 발견] 3대째 수원왕갈비맛 이어온 이광문
  • 박혜림
  • 승인 2019.08.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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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은 왕갈비지"… 74년 지킨 맛이 만든 말이죠
▲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이광문 장인이 수원갈비 원조인 화춘옥만의 전통 맛을 지켜가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다.

 

▲ '화춘옥' 이광문 장인이 정성스럽게 손님상을 내고 있다.

 

 

조부, 지역 최초 양념갈빗집 열어
17㎝ 크기에 '대통령 단골집' 소문

전국서 몰려들자 인근 가게 들어서
IMF·상속세 폭탄에 잠시 문 닫아
맛 달라질까 대기업 제휴 거절도

온 가족 단골 외식 메뉴 하면 예나 지금이나 갈비만 한 게 없다. 갈비의 본고장 수원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수원 왕갈비가 있다. 왕갈비답게 손 뼘만 한 뼈대와 두툼한 살집, 달콤 짭조름한 양념까지. 수원 왕갈비의 뿌리 '화춘옥'과 3대째 내려오는 특제 양념 비법으로 수원 전통 갈비의 맛을 지켜가고 있는 이광문(63) 장인을 31일 만났다.

#원조 중에 원조 수원왕갈비

특정 음식점이 즐비한 거리를 걷다 보면 너도나도 죄다 '원조'란다. 도무지 어디가 진짜 원조인지 알 길이 막막하지만 올해로 74년째, 3대째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는 화춘옥 만큼은 수원왕갈비 역사의 토대라 자부한다.

화춘옥은 1945년, 이광문 장인의 조부이자 화춘옥 창업자인 이귀성씨가 수원 영동시장 싸전거리 일대에 문을 열어 수원 갈비 명성에 초석을 마련한 수원지역 최초의 양념 갈빗집이다.
초창기 화춘옥은 해장국이나 설렁탕을 팔던 식당 형태였다. 그러다 갈빗대 통째로 천일염을 주재료로 한 특제 양념 소스를 발라 석쇠에 구워 손님에게 냈던 요리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얻게 되면서 '수원 왕갈비'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됐다.

"화춘옥이 있기 전 저의 조부께서는 '화춘 제과'라는 간판을 내건 제과점을 운영했습니다. 해방 직후 설탕이나 밀가루 등 재료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식당으로 업종을 바꾸셨고, 한창 수원 싸전거리, 지금의 영동시장 일대로 우시장이 번성하던 시기에 고깃집을 열게 됐습니다."

곧 6·25가 발발했지만 전쟁 통에도 화춘옥은 번성했다. 창업자 이귀성씨가 세상을 떠나자, 이광문 장인의 부친인 이영근씨가 운영을 도맡게 됐다.

"주변에서는 화춘옥을 창업한 할아버지의 이름을 기억하지만 실상 지금의 화춘옥을 있게 한 장본인은 우리 아버지시죠. 공직생활을 하시던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하던 일을 그만두고 화춘옥을 맡아 운영하시게 됐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어느 누구보다도 인심이 후한 주인장들이셨죠. 정도 많고 따뜻했던 두분의 모습이 아직도 또렷이 기억납니다."

#대통령도 다녀갈 정도로 명성 떨친 화춘옥

날로 번성한 화춘옥은 70년대에 들어서며 전국에 명성을 떨쳤다. 한우를 고집하는 값비싼 서울 갈비와 달리 17㎝나 되는 갈빗대에 살점이 붙은 특대사이즈의 화춘옥 왕갈비는 맛도 맛이지만 보릿고개 시절 절반도 안 되는 가격으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특식이었다.

한 번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다녀간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춘옥을 표방한 갈빗집들이 수원일대에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다. 수원이 갈비 명소가 된 것도 이때부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주 찾는 단골 고깃집으로 알려졌죠. 그때만 해도 지방을 가기 위해서는 수원을 꼭 거쳐야했는데, 박 전 대통령이 지방 시찰에 나설 때마다 들렀던 곳이 바로 화춘옥이었습니다. 이후 대통령이 먹은 고기 맛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었고 빠르게 입소문이 퍼지자 일대로 갈비집이 형성되기 시작했죠."

천하제일을 자부할 만큼 맛이 좋은 고깃집으로 이름을 날렸던 화춘옥도 시련이 닥쳤다. 급격하게 바뀐 조세제도와 IMF라는 악재가 겹치면서 잠정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상속세가 처음 도입될 시기였죠. 부친께서 저에게 일임하려 했던 화춘옥이 천문학적 비용의 상속세 폭탄을 떠안게 되면서 운영이 어려워졌고 급기야 문을 닫게 됐습니다."

하지만 화춘옥은 20년 만인 1999년 다시 문을 열었다. 한차례 역풍을 맞고 난 뒤였지만 여전히 화춘옥을 잊지 못한 손님들의 문의가 빗발쳤다.

"한 번은 이천에 사시던 한 손님께서 어릴 시절 먹은 화춘옥 갈비 맛을 잊지 못하시겠다며 죽기 전에 꼭 한 번 화춘옥 갈비를 먹고 싶다고 연락해 오셨습니다. 그 뒤로도 많은 손님들이 화춘옥 갈비의 맛을 보고 싶다는 문의가 쇄도했고, 화춘옥이 다시 문을 열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이 장인은 결국 화춘옥을 다시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함께 식당을 꾸리셨던 어머니를 찾아가 비법을 전수받았다. 그는 조부와 부친이 일궜던 화춘옥의 맛을 재현해 내기 위해 연구에 매진했다.

"문 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매스컴에서 앞다퉈 화춘옥을 소개했죠. 연예인부터 갈빗집을 차리기 위한 이들까지 그 비법을 묻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역사를 남긴 화춘옥 수원왕갈비

화춘옥은 2006년 일어난 광우병 파동 여파로 또 한 번의 위기를 맞게 된다. 발길이 끊긴 화춘옥에는 파리만 날렸다. 이 장인은 다시 일으킨 화춘옥의 문을 무작정 닫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해 4일 쉰 게 다일 만큼 고집스럽게 지켰죠."

이 장인이 지키려 한 것은 화춘옥이라는 이름뿐만이 아니었다. 화춘옥의 전통 왕갈비 맛을 고집스럽게 지켜왔다.

"광우병 사태가 해소되면서 대형 기업들이 잇따라 제휴 문의를 해 왔죠. 일확천금을 벌 기회였을지는 몰라도 70년을 지켜온 화춘옥 전통 맛이 훼손 되는 것은 더 큰 것을 잃는 것이라고 판단해 제의를 고사했습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치 않습니다."

이후 이 장인이 병환으로 화춘옥 운영을 잠시 접을 때까지도 손님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현재는 형님이 용인에서 화춘옥 분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수원에 있던 화춘옥은 제 건강이 좋지 않게 되면서 결국 문을 닫게 됐고요. 다시 문을 열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형편이지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겁니다."

수원지역이 왕갈비의 대명사로 불리기까지 수원 갈비 역사에 한 축을 담당했던 화춘옥은 이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날이 머지 않았다. 실제로 화춘옥이 문을 열 때부터 써왔던 각종 냉면기와 그릇들은 수원박물관에 기증돼 있다. 박물관 내에는 화춘옥이 문을 열 당시의 모습이 생생하게 재현돼 있으며, 화춘옥의 역사적 가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 장인이 고집스럽게 화춘옥을 이끌어 온 이유는 단 하나, 손님이 남기고 간 한마디 때문이다.

"'맛있게 먹고 갑니다' 이 한마디죠. 오로지 기본에 충실하려 했던 저의 신념과 손님의 한마디가 지금의 화춘옥을 있게 만들었습니다."

/글·사진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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