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흥 논설위원

74번째 광복절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는 공교롭게도 우리나라와 일본의 무역 갈등이 고조되는 상황과 겹쳐있다.
일본은 지난 2일 우리나라를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전략물자 무역 우대조치를 철회하겠다는 뜻이란다. 이 탓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우리의 주력 수출 품목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우리도 이에 대응해 군사정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을 더 이상 우리의 우방으로 취급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무역 갈등이 양국 간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는 형국이다.
일본에 대한 대응에는 민과 관이 따로 없다. 인천시는 지난 2일 긴급대책회의를 열어 14개 기관·단체의 공동 대응을 결의했다.
인천지역 시민단체들의 움직임도 거세다. 가장 열성적인 단체 중 하나가 민족문제연구소 인천지부다. 단체 이름만 들어도 이번 사태에 앞장서는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한일 과거사 정리와 친일잔재 청산을 통해 굴절된 역사를 바로 세우겠다는 것이 이 단체의 활동 목표다.
이들은 지난 5일 인천 동암역 앞에서 'BOYCOTT JAPAN' 캠페인을 펼쳤다. 인천내항살리기시민연합, 헌법개정실천운동 인천본부, 통일민주협의회 회원들도 동참했다. 회원들은 피켓시위와 서명전을 벌이며 시민들에게 차량 부착용 스티커를 나눠줬다. 여기엔 '(일본여행) 절대 가지 않겠습니다, (일본제품) 절대 사지 않겠습니다'라는 글귀가 담겨 있다. 앞으로 휴대폰용 소형카드 1만5000여 장도 제작해 배포할 예정이란다.
하지만 이런 범국민적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민주당 정책연구소인 민주연구원 문건이 대표적이다. "한일 간 무역 갈등이 내년 총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것이 그들의 분석이다. 이런 내용을 자기들끼리 몰래 돌려보는 이기적인 태도는 국민들을 실망에 빠뜨리기에 충분하다. 온 나라의 역량을 한데 모아도 모자랄 판에 총선 타령이라니, 국민들의 정서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행동이다.
동암역 집회에 참석한 한 시민의 말이 뼈아프다. "저는 집회에 잘 참석하지 않지만 이번만은 나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 보니 정당 색깔이 너무 드러납니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보통 사람들도 이번 불매운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BOYCOTT JAPAN' 캠페인에 참여하는 시민들이 한번쯤 고민해야할 충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