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문화의 도시로 자부하는 파리의 전체 20개구(區) 중에서 5구와 6구에는 유명한 출판사와 서점들이 많이 자리 잡고 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옛날 책을 파는 고서점들도 이 지역에 많다. 요란한 실내 장식이나 화려한 조명도 없는 고서점에서는 귀하고 오래된 책들을 취급한다. 17세기와 18세기에 발행된 옛날 책들도 있지만 20세기에 출판된 서적의 초판본들도 귀중한 수집용 책자로 분류된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인쇄한 '직지심경'을 펴낸 우리나라도 책에 관한한 과거는 물론 현재도 선진국에 속한다. 그러나 옛날 책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수집가들이 드물고 따라서 전통 있던 대부분의 고서점들도 사라지고 말았다. 경제성장과 함께 아파트가 주택의 대세로 자리 잡고, 잦은 이사 과정에서 책들이 제자리를 잃은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 6월 4년마다 열리는 프랑스 장인선발 대회에서 한국인 조용덕(44) 씨가 예술제본 분야의 최고상을 받은 것은 국내외의 화제가 되었다. 1924년부터 정부주관으로 4년마다 217개 분야의 장인을 선발해 수상해온 세계적인 행사의 예술제본 분야에서 한국인이 최고상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국내에서 뜻밖의 소식을 접한 필자도 이번 여름 프랑스에 가면 우선적으로 그를 만나보고 싶었다. ▶조용덕 장인이 일하는 피에르 에스카라 공방은 파리 13구 브로카(Broca) 길에 위치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파리의 중산층 주택지역이며 주변에는 국립타피스리제작소 고불랭이 있는 공방에서 만난 장인은 부드러운 인상이었지만 제본에 집착하며 완벽을 추구하는 꼼꼼하고 철저한 사람이었다. 원예학을 전공한 그는 20여 년 전 영국에서 화훼장식사 자격을 취득한 후 프랑스로 와서 캘리그라피(서예)에 심취하다가 고서제본장인 쇼벨씨의 문하에 들어가 3년만에 자격증을 따는 집념의 사나이였다. ▶고서 등을 만지다보면 옛 장인들이 인쇄하고 제본한 책의 가치를 느끼게 되고 책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제본하고 표지를 새로 만들다보면 옛 장인들과 소통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디지털시대에 종이책의 종말을 예언하는 사람이 있지만 인류와 문화가 존속하는 한 책은 항상 존재할 것으로 믿는다는 예술제본 장인은 우리도 책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고 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파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았지만 조용덕 장인과의 만남을 통해 손재주 좋고 집념 있는 젊은이들이 세계 도처에 진출해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