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의 맏딸 조호정(91) 여사는 올해도 추모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3~4년 전부터 조 여사의 몸이 쇠약해진 탓이다. 31일 서울 망우리 공원묘지에서 열린 죽산 60주기 추모식에서 만난 죽산의 외손녀 이성란(59)씨는 "수십 년 동안 어머니가 마음고생하셨던 게 건강 문제로 이어진 것 같다"며 "혼자서 자서전을 쓰다가 결국 앓아누우셨다"고 말했다.
이씨는 날씨가 선선해질 때면 고령인 조 여사 손을 잡고 할아버지 묘역을 찾는다. 죽산이 '사법살인'을 당한 한여름은 그에게도 아프게 다가온다. 이씨는 "추모식을 준비할 때마다 어머니는 '더위를 무척 타시던 분이 옥중에서 얼마나 힘들었겠어'라는 혼잣말을 하시곤 했다"며 목멘 소리로 말했다.
재판정은 죽산 유족에게 한으로 남았다. 조 여사는 지난 2011년 1월20일 죽산이 무죄 판결을 받은 대법원 재심 선고날에도 건강 이상을 호소했다. 이씨는 "재심 판결을 앞두고 어머니가 갑자기 법원에 못 가겠다고 했다"며 "할아버지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 60년 전 그날이 트라우마로 남은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이날 추모식에서 조 여사를 대신해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그는 "할아버지는 공적인 자리에선 냉철하고 빈틈이 없었지만 상대방에 대한 배려심이 깊었던, 자상하고 따뜻한 사람이었다"며 "할아버지를 잊지 않고 해마다 소중한 시간을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은희 기자 haru@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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