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잇는 몸짓
▲ 가평에서 20년 가까이 지역문화예술 장인으로 활동하면서 지역문화예술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장영미 장인.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중1때 발탁된 무용부 '매료'
아버지 반대 꺾고 대학 전공
결혼 뒤 유치원생 강습만 하다
가평 문화예술단 이끌며 무대
지역홍보단으로 국내외 누비며 36년째 전승
연습실·의상 등 여건은 아쉬워




깊이와 무게가 있는 한국무용은 고유의 멋과 흥을 담고 있다. 한국무용으로 가평 자라섬의 아름다움을 국내외에 알리고 있는 무용가 장영미(51)씨는 전통 춤꾼으로서 한국무용의 가치를 높이고 있다. 가평에서 20년 가까이 지역예술문화 장인으로 활동하면서 지역예술문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장 장인을 29일 가평문화예술회관에서 만났다.

#36년간 함께 한 한국무용

무용은 감정과 의지를 동작으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그런 무용의 매력에 흠뻑 빠져 40년 가까이 한국무용과 함께 해온 장영미 장인은 가평을, 나아가 대한민국을 무용을 통해 세계에 알리며 삶의 보람을 느낀다.

어려서부터 무용에 재능이 있었던 장 장인. 중학교 1학년 때 교사의 발탁으로 무용부에서 활동하게 된 그는 한국무용을 접하고 우아미 넘치는 단아함에 매료됐다. 당시 학교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열린 무용부 공연을 통해 장 장인은 한국무용의 매력을 한껏 뽐냈다.

"한국무용을 하면서 설렘이 가득했어요. 전문적으로 무용을 배워보고 싶어 당시 목포에 딱 한군데 있었던 무용학원을 찾아가 본격적으로 한국무용을 시작했습니다. 광주에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무용에 집중했는데 대학 진학을 앞두고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어요. 국문과에 진학하라는 아버지의 완강한 뜻을 꺾기 위해 단식투쟁을 했습니다. 결국 아버지를 설득해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하게 됐고 가족들의 든든한 조력을 받으며 무용가의 삶을 살게 됐지요."

무용을 반대했던 아버지는 장 장인의 공연을 보고 감동해 눈물을 쏟기도 했다. 장 장인은 "아버지의 평가가 사실은 제일 두려웠다"며 "무대에 오른 딸의 공연을 보고 펑펑 눈물을 쏟는 아버지의 모습을 목격했을 때 한국무용을 하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그가 한국무용에 몸담은 세월도 어느새 36년이 됐다.

#한국무용으로 가평을 알리다

결혼과 동시에 장 장인은 전라도 광주에서 경기도 가평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며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무용가로서 무대에 직접 서지는 못했어요. 그 세월이 딱 10년이더라고요. 하지만 직접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그 시절에도 유치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용을 가르쳤습니다. 언젠가 다시 무용가로 무대에 오를 날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무용의 곁을 떠나지 못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문화예술단원 모집 공고가 떴다. 장 장인은 망설임 없이 가평문화예술단을 찾아갔다. 가평에서 처음으로 시민대상 예술단원을 모집한 것이었다. 그곳에서 장씨는 당당히 예술단원이 되어 무용가로서 제2의 삶을 시작하게 됐다.

"전공자부터 취미생활을 하는 일반 주부까지 예술단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당시 40대 초반의 나이였지만 몸으로 배워 놓은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기에 자신감을 가지고 무용가로 무대에 다시 서기 시작했습니다."

단원 활동을 이어오던 장 장인은 2006년부터 직접 가평문화예술단을 이끌게 됐다. 2008년 가평세계캠핑캐라바닝대회 유치를 준비 중이던 가평군으로부터 가평지역 홍보단으로 선정된 가평문화예술단은 해외공연을 하며 가평과 대한민국을 해외에 알리는 뜻깊은 일을 하게 됐다. 폴란드세계캠핑캐라바닝 한국대표단 등의 활동을 하면서 예술단이 가평세계캠핑캐라바닝대회 유치에 큰 도움이 됐다.

"당시 지역문화예술인들이 직접 가평을 홍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어요. 가평문화예술단이 나서게 됐습니다. 해외에서 '아리랑' 등 우리나라 전통 가락과 전통 춤으로 이뤄진 공연을 하면서 가평과 대한민국을 널리 알렸고 현지에서 높은 호응을 얻었습니다. 폴란드 지역신문에도 기사가 나올 정도였지요."

#지역문화예술의 맥 이을 것

장 장인이 가평문화예술단을 이끈 지 올해로 13년이 됐다. 18명의 소속 단원들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무료공연을 열고, 지역 내 각종 행사무대에도 빠짐없이 오른다.

"직접 안무를 짜고 무대에 올린 작품은 10여가지 됩니다. 5분, 7~8분 등의 주어진 시간 동안 선정한 곡에 맞는 안무를 구성해 내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요. 단원들과 아이디어를 모으고 함께 땀흘리며 연습하는 덕분에 좋은 공연 무대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예술단이 한국무용에 대한 열정으로 똘똘 뭉쳐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한국무용에 대한 열정과 달리 가평문화예술단의 소박한 살림살이는 장 장인에게 아쉬운 대목이다.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연습실 한쪽에 구비돼 있는 무대 의상은 30여벌이 전부. 이 때문에 18명의 단원이 한꺼번에 무대에 오를 수 없다.

"의상 제작비용이 부족하다보니 한 벌을 제작할 때면 2~3개의 작품을 소화할 수 있도록 주문해요. 18명이 함께 하는 단체 공연이 여의치 않아 공연 작품을 만들때 5~6명 기준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장구, 북, 소고, 부채, 검 등 장비는 물론이고 버선, 족두리 등 한국무용에 필요한 사소한 장신구까지 사비를 털어 마련해야 하는 형편이지요."

그는 예술단 연습실에서 손이 얼어 장갑을 끼고 부채춤을 추기도 했고, 지하에 물이 차올라 퍼나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예술단을 지키며 이끄는 이유는 '몸과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생각에서다.

장 장인은 "만학(晩學)의 무대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인 이 공간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며 "지역문화예술의 맥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예술단은 사명을 가지고 무대에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

/안상아 기자 asa8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