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남석 인천교통공사 귤현경정비팀 파트장

1998년 12월15일 밤을 잊을 수 없다. 밤 10시경 인천도시철도 1호선 최초의 전동차는 경기도 의왕을 출발했다. 동암역에 정차한 전동차는 인천지하철공사(인천교통공사)의 입환 기관차와 연결됐다. 인천시청역으로 이어지는 반입선을 통과한 열차는 인천 1호선 선로로 진입해 약 20분간 달린 끝에 귤현차량기지에 도착했다. 새벽 4시 즈음이었다.

첫 열차의 시운전은 힘든 과정의 연속이었다. 차량기지의 선로전환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아 경운기 시동용 레버를 사용해 수동으로 진로를 바꿔가며 전동차를 운행시켜야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운전을 하며 문제점을 찾아냈다. 구내 시운전에서 문제가 발견되지 않아야 비로소 본선에 차량을 투입할 수 있었기에 수첩이 까맣도록 메모하고 전동차의 기능을 거듭 보완하면서 점차 완벽한 차량으로 만들어 나갔다.

수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본선 시운전을 진행할 수 있었다. 당시 본선 터널은 공사 중이었다. 시속 80㎞/h로 운행하는 열차가 일으키는 열차풍은 터널의 벽과 바닥에 쌓여있는 온 먼지를 차량 틈새로 스며들게 만들어 내부를 난장판으로 만들곤 했다.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시운전을 마치고 돌아오면 전동차의 전기회로를 분석하고 최첨단 컴퓨터 시험기의 기능을 익혀 갔다. 4만여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전동차를 분석하다 보면 근무시간을 넘기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포정해우(牛))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포정'은 소를 잡아 뼈와 살을 발라내는 솜씨가 아주 뛰어났던 고대 중국의 이름난 요리인의 이름이고, '해우(解牛)'는 소를 잡아 뼈와 살을 발라내는 것을 말한다. 기술이 매우 뛰어남을 가리키는 말인데 어느 분야에 거의 달인의 경지에 이르러 신기에 가까운 솜씨를 비유할 때 쓰는 말이다. 전동차와 함께 한 20년, 이제는 포정해우의 뜻을 새길 때가 되지 않았을까.

오는 10월이면 인천지하철 1호선이 개통한 지 20주년이 된다. 20년 동안 쉴 새 없이 운행하며 시민들의 발 역할을 한 전동차가 마치 내 모습 같다. 지나온 세월만큼 전동차 정비 현장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2016년 7월 인천 2호선의 개통은 새로운 전동차량과 시스템의 도입으로 이전보다 다양한 숙제들을 안겨주었다. 정비 환경은 복잡해졌지만 연이은 신입사원들의 입사로 현장 분위기는 보다 활기가 넘친다.

지난 6월 말, 고락을 나누었던 선배들의 정년 퇴임식이 있었다. 첫 전동차를 같이 들여왔던 개통 동료들과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그간 쌓아온 노하우를 제대로 전수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후배들 또한 나처럼 여러 번의 실패와 좌절을 맛볼 것이다. 그러나 지난한 업무 경험과 세월을 거쳐 포정과 같은 전문가로 거듭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찌 보면 아쉬웠고, 어찌 보면 힘들고, 쏜살같이 지나온 20년이 우리를 성장시켜 주었듯이.

돌아보니
가시밭길
그 길이 꽃길이었다
아픈 돌팍길
그 길이 비단길이었다
캄캄해 무서웠던 길
그 길이 빛으로 나아가는 길이었다.
- 허영자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