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만에 8억5700만원 모금 … '석상 건립' 본격화
강화 출생·을구 국회의원·중구 거주, 위치는 미정

 

8년의 기다림이 열매를 맺는다. 1000원부터 3000만원까지 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을 기리는 5500여명의 손길이 모여 마침내 석상의 주춧돌이 쌓였다. 시민 모금 운동을 벌였던 새얼문화재단은 죽산 탄생 120년, 서거 60년을 맞은 올해 석상 건립에 나서기로 했다.

새얼문화재단은 올 하반기 죽산 선생의 석상 건립을 본격화한다고 29일 밝혔다.

지난 2011년 4월부터 시민 모금으로 쌓인 건립 기금은 이자를 포함해 8억5700여만원이다. 8년 만에 당초 목표로 했던 8억원을 넘어섰다. 모금 운동에 참여한 인원은 5554명에 이른다. 죽산의 고향인 인천뿐 아니라 서울, 멀리서는 부산에서도 성금이 전해졌다.

동상으로 시작한 건립 사업은 석상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은 "죽산은 죽음을 각오하면서도 '평화통일론'을 들고 나왔다. 그가 진정 '돌을 뚫고 나온 분'이라는 점을 보여주려면 동상보다는 석상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관련인터뷰 3면

재단은 조각가를 선정하는 작업부터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석상이 세워질 위치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강화군 출생인 죽산은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인천 '을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인천 선거구는 2개로 나뉘었는데, 경인철도를 경계로 북쪽이 을구였다. 지금의 동구·부평구·서구 등지를 아우른다.

죽산은 일제강점기 말부터 제헌의원 시절까지 중구 도원동에 살기도 했다. 죽산이 태어나 현대사의 거목으로 자리매김한 인천 곳곳에 죽산의 숨결이 서려 있다.

모금이 시작되기 3개월 전인 지난 2011년 1월20일 대법원 재심에서 죽산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헌정 사상 첫 사법살인'이 집행된 지 50여년 만이다.

석상 뒤에는 모금 운동에 참여한 5554명의 이름이 모두 새겨진다. 죽산을 기리고 함께할 이름들의 의미도 적잖다.

지 이사장은 "죽산 석상 건립만큼은 재단 자체 사업이 아니라 적은 금액이라도 죽산을 기리는 사람들의 뜻을 모으고 싶었다"며 "석상에 새겨지는 5500여명의 이름으로 죽산이 무죄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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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죽산의 '큰 뜻' 오늘에 새기는 지용택 새얼문화재단 이사장 "동족상잔으로 치달을 때 평화통일을 얘기하는 사람이 없다면 역사적으로 불행한 거예요. 민족사적으로도 부끄러운 일이고. 죽산은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평화통일을 들고 나왔어요."지용택(83) 새얼문화재단 이사장이 바라보는 역사는 '오늘의 역사'다. "역사가 있기에 오늘이 있지만, 역사의 평가는 오늘날 이뤄진다"는 말이다. 지 이사장은 바로 오늘의 역사에서 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을 되새긴다.죽산 60주기를 앞두고 29일 인천 중구 새얼문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난 지 이사장은 "색다른 얘기부터 하자"며 미국 워싱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