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숙 백석대 교수·마인드웰심리상담센터 상담사

볼비(J. Bowlby)의 애착이론에 따르면 유아가 어린 시절 엄마나 양육자와 긴밀한 애착 관계를 잘 형성하면 정서적으로 안정적이고 신뢰감을 갖게 된다. 그러나 불안정 애착이 형성된다면 대상에 대한 불안이 증가하고 친밀감 같은 깊은 유대관계를 경험하지 못해 대인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특히 양가 불안정 애착형은 친밀감을 표현하지 못하고 버림받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충분히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런 감정은 어린 시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병리적인 패턴이 어느 정도 평생을 유지하며 다음 세대에도 대물림이 될 수 있다.

부모의 과거가 만들어낸 부모의 생각이나 가치는 자녀의 지각과 행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세상에 태어난 것이 축복이 된 자녀가 있는가 하면 태어난 것이 떳떳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내담자의 아버지는 본부인이 있었는데도 어머니(남편과는 사별하고 아들이 하나 있었다)와 결혼하기 위하여 거짓말을 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삶에 대한 서글픔 때문에 딸이 태어난 것을 기쁘게 여기기보다는 아주 잠시지만 차라리 죽기를 바랐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에도 어머니는 딸이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초라하고 부끄럽게 여겼다. 그렇게 성장한 딸의 자존감은 형편없이 떨어졌고 결혼해서도 자신이 직업을 가진 여성임에도 남편이나 시댁식구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술만 드시면 주사가 심했고 어쩌다 한번 들어오면 가재도구를 부수거나 횡포를 부리고 돈을 내 놓으라고 어머니를 심하게 때렸다. 사춘기 시절 엄마가 첩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나는 나의 어린시절을 철문으로 마음을 꽝하고 닫아버렸다."

"사춘기 시절 이후 나는 남자들은 모두 위협적이고 경멸의 대상으로 여기고 시집가는 날까지도 결혼을 미루면 안 되냐고 떼를 쓰고, 결혼 후에도 남편의 일거수일투족을 의심하며 남편과 헤어질 생각만 하고 살았다"고 고백한다.
내담자는 시댁식구들과 함께 살면서 믿었던 남편마저 내가 미쳤다고 정신과에 처넣어야한다는 말에 극도의 공포에 시달리며 대인기피증, 우울증으로 사면초가에 빠지기도 했다고 한다. 남편과 별거를 하였다가 다시 재결합하여 돌고 돌아 다시 지금은 안정을 되찾았다.

성장기에 심리적 안정감 속에서 충분히 좋은 환경에서 정서적인 지지를 받고 자신에 대한 신뢰가 형성된 것과는 다르게 자신의 정체성에서 수치심을 경험하고 자란 내담자이다. 자신의 감정을 알기도 어렵고 성장기에 해결하지 못한 상처받은 감정들은 자기열등감, 수치심, 자기애적인 상처, 증오들이 분노로 수반됐다. 성장하면서 형성된 자기 대상은 애정에 목마르고 관심받기를 원하고, 의존적이며 자신이 가치가 없어 우울하기까지 했다.

어린 시절의 부정적인 감정의 경험은 어른이 된 후에도 성찰되지 못하면 무의식 가운데 되풀이 되는 경향이 강하다. 상처받은 내면 아이는 모든 불행의 가장 큰 원인이며 인생에서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자기애성 인격은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주의와 관심을 주지 않거나 자신이 다른 사람과는 확실히 구별된 방식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지 못했다고 느낄 때 분노를 일으킨다.
코헛에 의하면 자기 대상에 대한 극심한 실망은 자기 붕괴로 이어져 사소한 상처에도 엄청난 자기애적 격노를 보인다. 자기 대상이 독립성이나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때 이것을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한다.
자아는 단지 복수를 위한 도구가 되고 자아의 모든 실패의 원인을 자기 대상의 잘못으로 자책하므로 자신을 공격하게 된다. 이런 것이 우울증이나 신체적 장애, 정신적 장애를 일으키게 된다고 체식(Chessick)은 말한다.
내담자는 힘겨운 인생을 마무리 한 엄마에 대한 죄책감으로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앞으로 자신의 인생에 대하여 모든 것에 대하여 100% 책임을 지고 내면을 바라보며 정화를 계속해 나갈 것이며 그 다음은 신성의 지혜에게 맡기리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