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인천 서구에서 붉은 수돗물이 나온 지 거의 두 달째. 이제 원인도 파악되었고 정상화에 가까운 듯하다. 7월 중순에는 붉은 수돗물 문제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 대한 보상을 협의하는 회의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미 해당 주민들에게는 6월과 7월의 수도요금이 면제됐다. 벌써 시는 보상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 모양이다. 앞으로는 주민들이 요구하는 보상금의 규모와 지급 방법 등에 대해 논의가 본격화될 예정이다.
인천시장이 붉은 수돗물로 인한 피해를 입은 주민들에게 모두 동일한 기준으로 보상하겠다고 밝혔다. 수돗물 대신 생수나 정화장치를 구입한 주민들,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러지 않은 주민들, 또는 구매 영수증을 챙기지 않은 주민들 모두 똑같이 보상하겠다는 말이다.

여기에 쓰일 예산은 인천시 상수도사업본부의 예비비로 잡혀 있는 300억원 등이다. 2018년 서구의 구정백서에 따르면 서구의 인구가 51만6017명이었고 중구청 홈페이지에 2018년 말 영종도 주민이 6만9771명이었다니 보상금은 대략 주민 1인당 약 6만원 규모로 추정된다.
이 돈으로 더운 여름 두 달 동안 수돗물을 이용하지 못한 불편함을 다 헤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붉은 수돗물 때문에 장염이나 피부병에 걸린 사람들에겐 의료비 보상만으로도 어루만져지지 못할 고통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보상기준에서 생기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편으로는 공평하게 보일 지 모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꼼꼼하게 영수증 모아가며 알뜰하게 생수나 정수장치 등을 활용한 주민들은 그렇지 않은 주민들이 보상을 더 받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가질 수 있다. 배고픈 것은 참을 수 있는데 남 때문에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세상이다.

이참에 눈길을 모으는 일이 있다. 전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무분별한 현금복지 정책을 재검토하자는 일이다. 지난 4일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가 출범했다. 염태영 수원시장이 특위위원장을 맡았는데 "지역 간 현격한 재정 격차 등으로 인해 어려움이 심화되면서 기초지방정부들이 맞춤형 복지 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하는데 곤란을 겪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특별위원회는 "보편적 복지 급여는 전국적으로 일관되게 지급되도록 중앙정부가 전담하고 지방정부는 지역별 복지 서비스 발굴과 제공에 전념해 '차이는 있되 차별은 없는' 복지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특별위원회는 2021년까지 전국에서 실시되는 각종 현금복지 서비스에 대하여 평가하면서 성과가 없는 것은 폐지하도록 만드는 반면, 성과가 좋은 사업은 중앙정부가 전국적으로 시행하도록 추진할 계획이다.
과거 오랫동안 현금복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중 서울 중구가 만 65세이상 기초생활수급자와 기초연금 대상자에게 매달 10만원의 노인수당을 지급하면서 논란이 전에 없이 더 커졌다. 중구에 붙어 있는 성동구가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같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동에 따라 중구와 성동구로 나뉘는 경우가 있는데 같은 아파트 노인 사이에 수당을 받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생긴 것이다. 노인수당을 받지 못하는 노인들이 성동구에 얼마나 많은 민원과 원망을 쏟아냈을 것인지는 불 보듯 뻔하다. 그러나 중구보다 재정자립도가 훨씬 낮은데 인구는 두 배 이상 많은 성동구는 중구처럼 노인수당을 주기 위해서 연간 280억원을 추가 부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과도한 현금복지 경쟁을 수술하자고 했다.

그렇다고 중앙정부의 현금복지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2017년 이후 고용노동부의 재정지원 일자리 사업에서만 860억원이 도덕적 해이에 빠진 시민들에게 새어나갔다고 한다. 고용부의 관련 사업은 직접일자리, 직접훈련, 고용서비스, 고용장려금, 창업지원 밑에 세부 사업이 69가지가 된단다. 그 가운데 실업급여를 부정으로 타간 것이 올 상반기에만 90%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많았다. 가짜 실업자에게 실업급여를 타도록 돕고 수수료를 챙기는 전문 브로커까지 등장했다니 국가의 현금복지가 참으로 창조적 일자리까지 만들었다.
붉은 수돗물 피해보상이 곧 현금복지는 아니다. 구조적인 대책 없이 현금으로 민심만 얻는 것이 똑같아 보인다는 말이다. 붉은 수돗물의 원인 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를 뒤로 미루면 책임져야 할 사람이 오히려 세금으로 선거만 챙긴다고 오해만 살 것이다. 동일 보상하면서 무임승차나 도덕적 해이가 안 생기도록 사전에 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 해결부터 사후 처리까지 모두 실패하는 셈이 될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