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오두빌(Audouville)은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망슈(Manche)주에 있는 인구 100여명에 불과한 마을이다. 2차대전 당시만 해도 인구가 100여명을 상회하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으나 농가의 대형화와 중대도시로의 이주로 인구가 급감한 것이다. 서북쪽으로는 영화 <쉐르브르그의 우산>으로 유명한 항구도시 쉐르브르그와 서남쪽에 있는 꺄랑탕이라는 도시가 오두빌 주민들이 일용품을 사러 나가는 곳이다. ▶지난 주말 프랑스에서 출생하여 프랑스에서 학업을 끝내고 다국적 석유회사에서 일하는 막내딸 명재부부가 마련한 노르망디의 별장이 있는 오두빌을 찾았다. 1944년 6월6일 D데이로 시작된 노르망디 미군 상륙해안 유타비치에 인접한 오두빌 인근의 크고 작은 광장과 관공서 건물들 그리고 일반주택에도 성조기들이 휘날리고 있어서 미국에 와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75주년이 되는 올해는 과거 어떤 해보다도 크고 다양한 기념행사들이 열렸고 계속되고 있었다. 6월6일 상륙기념일에는 대서양 해변에서 프랑스 대통령을 위시하여 연합국 정부 수뇌들과 60여명의 생존 참전용사들이 참가한 기념식이 열렸다. 캐나다의 참전용사 렙파드는 "전쟁은 지옥이다. 역사를 바꿨다는 자부심도 있지만 피나는 대가를 치렀다는 깨달음도 있다"고 했다. 이에 앞서 상륙작전 출발 중심 항구였던 영국 포츠머스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참전했던 100세에 가까운 용사들이 75주년 기념식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기쁘다"고 했다. ▶오두빌에 머무는 동안 유타비치와 오마하 비치는 물론 크고 작은 도시와 마을에 있는 박물관과 기념관들 10여 곳을 찾았다. 필자는 파리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에도 자주 노르망디 지방을 찾았고 특히 꼴빌(Colleville)에 있는 9387명의 미군 전사자 묘지는 여러 차례 찾았으나 며칠간 노르망디에 머물면서 구석구석에서 열리는 뜻있는 행사에 참가한 것은 처음이었다. ▶노르망디 상륙지점에 무려 94개에 달하는 기념관과 박물관 그리고 전몰장병 묘소에 아직도 세계 각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쌩 메르 에글리즈 마을에 있는 낙하산 부대 박물관에서 만난 영국인 그린 씨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75년에 걸친 유럽의 평화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다. 올해 말까지 계속해서 진행되는 75주년의 대표적 표어인 '그들의 희생으로 오늘의 자유가 있다'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