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고칠 일이란 없다 … 그에게 재봉틀만 있다면
▲ 어린 시절 밤을 꼬박 새워가며 어렵게 배운 수선 일 말고 다른 일은 꿈꿔본 적 없다는 42년차 수선 장인 김종기씨.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14살때 카메라 하드케이스 공장서 기술 터득
동업하려다 사기 당하고 업체 횡포에 생활고
평택에서 트럭장사로 시작했다가 가게 차려
42년째 '한 우물' … 목표는 리폼 전문점 개업




낡고 해진 가방과 신발을 멀쩡한 새것으로 만들어낸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 수선의 장인 김종기(56)씨는 올해로 수선 일을 시작한지 어느새 42년이 됐다. 어린 시절 밤을 꼬박 새워가며 어렵게 배운 수선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그가 가방 수선계의 장인으로 알려지자 그가 운영하는 수선가게 안은 손님들이 수선 의뢰한 가방들로 넘쳐난다. 헌 가방을 멋진 새 가방으로 만들어내는 김 장인을 만났다.

#어렵게 배운 기술, 42년의 시작

어린 시절 혹독한 시간을 견디며 기술을 배웠다. 기술만이 먹고 살 길이라고 생각한 김종기 장인은 남다른 인내와 끈기로 수선계의 마에스트로가 됐다.

14살때 동네 어르신의 소개로 서울에 소재한 카메라 하드케이스 공장에 취직했던 김 장인. 고향 충남 서천을 떠나 함께 일을 시작했던 친구들이 당시 6명이나 있었지만 서울살이의 어려움을 견디지 못한 친구들은 하나, 둘 공장을 떠났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서울에 취직했지만 명절에 고향에 내려가면 다들 다시는 서울로 올라가지 않았다"며 "고향에서는 형제들과 고깃배를 타는 것이 전부였기에 서울에서 무조건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말했다.

배움 대신 택한 서울행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그곳에서 기술을 익히는데 온힘을 다했다. 공장에서 이틀이 멀다하고 밤을 새우기 일쑤였다. 결국 김 장인은 6년에 걸쳐 공장에서 돌아가는 모든 재봉과 수선의 기술을 마스터했다.

김 장인은 "공장에서 남들보다 기술을 빨리 터득하자 가르침을 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며 "재주가 있어 곧잘 배웠지만, 카메라 하드케이스는 조금만 잘못해도 가죽이 틀어져 버리기 때문에 굉장히 힘든 작업이었다"고 회상했다.

함께 했던 친구들이 다 떠난 공장에 홀로 남아 12년간 성실히 수선일을 해 온 김 장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카메라 하드케이스를 제작하는 업체로부터 동업 제의가 들어온 것. 하지만 제대로 사업을 펼쳐보기도 전에 위기가 찾아왔다. 동업은 사기로 끝났고, 이후 옮긴 직장에서는 원청업체의 횡포로 하청이 끊겼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김 장인은 2층에서 낙상하는 사고까지 당했다.

#삶의 버팀목이 된 재봉틀

몸과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급선무였던 그는 서울에서 형제들이 살고 있던 평택으로 내려왔다. 그게 28년 전이다.

삶의 터전을 다시 만들어가는 일은 녹록지 않았다. 그는 "배운 거라고는 재봉 기술뿐이어서 곧장 슬리퍼 공장에 들어가 일하기 시작했다"며 "이후 미군 군화를 만드는 공장에 들어가 10년을 보냈다"고 말했다.

수선에 내공이 쌓일 만큼 쌓인 김 장인은 본격적으로 수선 일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고 작은 트럭 하나를 마련했다. 그동안 배운 기술을 활용한 가방 수선, 리폼에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수선 장비를 싣고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트럭장사에 믿고 물건을 맡기는 손님들은 많지 않았다.

기술이 있으니까 트럭장사로 수선 일을 해보려 했지만 툭하면 날아오는 불법주차 벌금고지서와 기름값을 충당하기 어려웠다. 트럭장사를 포기한 그는 두 평 남짓한 컨테이너를 얻어 수선가게를 열었지만 이마저도 1년을 가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김 장인은 비전동에 3평의 가게를 얻어 다시 수선 가게를 차렸다. 현재 9평의 점포로 규모를 확장하기까지 그는 줄곧 비전동에 머물렀다.

김 장인은 "트럭장사부터 시작해서 지금 이 자리에 오기까지 13년이 걸렸다"며 "고된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던 건 바로 수선기술 덕분"이라고 말했다.

#믿고 맡기는 수선의 달인

재봉틀과 함께한 세월만큼 그는 낡거나 해진 물건을 보면 어디가 문제인지, 어떻게 고치면 될지 한눈에 꿰뚫어 본다.

김 장인은 "온갖 고생을 했지만 지금은 수선일을 배우고 평생의 업으로 삼아온 것이 자랑스럽다"며 "손님이 어떤 가방을 맡겨도 수선을 척척해낼 수 있으니 뿌듯하다"고 말했다.

혼자서 수선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가방 리폼 문의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울은 물론이고, 경남 사천 등 전국 곳곳에서 낡거나 해진 가방들을 택배로 보내온다.

김 장인은 "손님들이 올린 블로그를 보고 먼 곳에서 찾아오거나 택배로 가방 수선을 맡기는 사람들도 많다"며 "쓸모없던 가방을 새것처럼 만들었을 때 손님들이 만족하는 모습을 보면 지난 날의 고생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보람있다"고 말했다.

평생 수선만 해온 그는 가방 리폼 전문점을 만들고 싶은 꿈이 있다. 김 장인은 수선의 장인으로는 이미 이름이 알려졌으니 조금 더 열정을 쏟아 패셔너블한 가방 디자인을 척척 만들어내는 가방 리폼의 전문가로도 인정받는 것이 김 장인의 목표다.

/안상아 기자 asa8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