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9년 송도유원지.


여름철 이맘때쯤 생각나는 공간 중 한 곳은 송도유원지다. 여름 성수기 하루 입장객이 5만명에 달할 정도로 90년대 초까지 수도권 최고 인기 여름 휴양지였다. 시즌 내내 그야말로 물 반 사람 반이었다.

1979년 군입대를 앞둔 여름, 송도유원지 해수욕장 솔밭에서 친구들과 야영을 한 적이 있다. 특별한 오락거리가 없던 당시는 셋만 모이면 고스톱판을 벌였다. 우리는 랜턴을 나뭇가지에 걸쳐 놓고 텐트 앞 희미한 불빛 아래서 패를 맞췄다. 밤이 깊도록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고, 스톱"을 외치고 있는데 방범대원들이 다가왔다. 네 명의 더벅머리 청년은 유원지 정문 바로 옆에 있는 파출소로 끌려갔다. 바로 취조가 시작되었다. "어디 사는지"에 이어서 "어느 학교에 다니냐"고 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를 포함해 앞의 세 명은 경찰관이 듣기에 '그저 그런' 대학에 재학 중이었다. "짜식들, 학교도 시원찮은 것들이…." 마지막 친구가 기어드는 목소리로 답했다. "네, 서울대학 다닙니다" "뭐, 서, 서울대?" 경찰관은 흠칫 놀라는 동시에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우리는 서울대생 친구 덕에 바로 풀려났다. 그땐 그랬다.

그랬던 송도가 다른 '송도'가 되었다. 바다를 메워 도시가 건설되었다. 인천도시역사관은 기획특별전 '송도 일대기: 욕망, 섬을 만들다'를 10월6일까지 연다. 한적한 어촌 마을이었던 곳이 '송도(松島)'라는 섬 아닌 섬이 되면서 관광지로 조성된 일제강점기, 그리고 국제도시로 탈바꿈한 현재의 송도까지 한 세기에 걸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우리는 '장소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짧은 시간에 터의 무늬가 터무니없이 변했고 수많은 공간이 우리 곁을 떠났다. 전시를 둘러보고 나면 앞으로 '송도'라는 공간은 어떤 욕망을 품고 언제까지 '고, 스톱' 할지 궁금해질 것이다.
/인천시립박물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