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 유네스코가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에 올렸다. 중국 성리학이 한국에 받아들여지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이 높이 평가됐다고 한다.
조선시대 서원하면 그 못된 폐해부터 먼저 떠오른다. 주자 등 중국 유학자들을 떠받들던 사대(事大)와 모화(慕華)의 본산이다. 이들을 제사 지낸다며 지방농민들을 가혹하게 수탈했다. 훗날 대원군이 일갈했다. "서원이 온통 백성만 더럽게 괴롭히니 이게 웬 꼴이냐."

# 마틴 루터 킹 목사. 'I have a dream'이라는 명 연설로 남은 흑인 민권운동가다. 그러나 뒤를 파봤더니 '인권 위인'과는 거리가 멀더라는 고발문이 나왔다. 운동을 다니던 도시들에 40여명의 내연녀를 두고 때론 난잡한 모임도 벌였다. 동료가 성폭행을 할 때도 웃으며 지켜보기만 했다고 한다.
# 몇년 전 일본에서 '모택동 인민의 배신자'라는 책이 나왔다. 중일전쟁 당시 마오(毛)가 친일, 반민족 행위를 자행했다는 내용이다. 군사정보를 일본군에 넘기고 국민당군을 붕괴시키는 데만 몰두했다는 거다. 일본 첩보기관과 접촉해 돈을 받았다는 얘기도 나온다. 훗날 일본 장군들을 초청해서는 일본군의 진공이 자기를 살려냈다고 감사해 했다는 것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 인간세상에는 늘 빛과 그림자가 함께 한다는 얘기다. 한 사람의 일생에도 착한 사람 나쁜 사람이 뒤섞여 있다. 흠이 있어도 큰 일을 할 수 있고 큰 일을 한 사람도 흠투성이일 수가 있다.
해공 재조명사업의 '테러 배후' 과거사 논란
경기도 광주시가 해공 신익희 선생 재조명 사업에 나섰다. 해공기념주간(8∼14일)에 '해공 민주평화상'을 시상하고 학술대회와 창작 뮤지컬 공연을 연다. 그런데 광주시의회에서 시작부터 논란이 벌어졌다. 알고 보니 해공이 해방 공간에서 테러의 배후 역할을 했다는 주장이 한 의원으로부터 나왔다.

"해공이 조직한 '정치공작대'가 현준혁·여운형 암살사건, 김일성 암살미수사건 등에 연루된 극우 반공테러공작단 '백의사'와 연결돼 있었다." 따라서 테러를 미화하는 해공민주평화상사업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일상에 바쁜 소시민들에게는 금시초문의 얘기였다. 참으로 대단한 과거사 파헤치기 업적이 아닐 수 없다.
'비나리는 호남선'과 '못살겠다 갈아보자'
지금까지 해공은 '비나리는 호남선'과 '못살겠다 갈아보자'로 기억돼 왔다. 20대에 상해임시정부 내무총장을 지낸 거물 독립운동가다. 제2대 국회의장을 지내고는 이승만 장기집권 저지의 선봉에 나섰다. 1956년 대통령 선거 때 '못살겠다 갈아보자'며 바람을 일으켰다. 정권교체의 목전까지 갔지만 뇌일혈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 지방유세를 위해 오른 호남선 열차에서였다. 정권교체를 바라던 민심은 그 때 막 발표된 '비나리는 호남선'을 목놓아 부르며 주저 앉아야 했다.
'테러 배후 해공' 논란에는 지금도 우리가 앓고 있는 나쁜 유전자들이 숨어 있다. 그 하나는 끝도 없이 과거로, 과거로만 파고드는 선명성 투쟁 유전자다. 이대로 가다가는 머지않아 홍경래의 난이나 만적의 난까지 재규명하게 될 것이다.
한 사람의 일생에는 빛도 그림자도
그러고 보니 해공에게는 그간 알려지지 않은 '친일파 비호' 의혹도 있는 모양이다.
해방 후 귀국한 해공은 조선총독부 고등문관 70여 명 앞에서 연설을 했다. "비록 여러분이 친일을 했다 해도 해방된 조국에 헌신 노력해 건국의 기초와 공로를 세워달라.(정종현 '제국대학의 조센징')" 저승의 최판관도 이를 두고 해공을 친일파로 단죄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 사람의 일생은 대개 그렇게 복잡다단하게 구성되는 것 아닌가.
다른 하나는, 밖으로는 문을 걸어 닫고 안으로, 안으로만 싸우는 내부투쟁 유전자다. 남한산성은 해공이 태어난 경기도 광주에 있다. 소설 '남한산성'에도 나온다. '밖으로 싸우기보다 안에서 싸우기가 더욱 모질어서, 글 읽은 자들은 갇힌 성 안에서 싸우고 또 싸웠고,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성에 넘쳐났다.' 이러다가 우리는 언제 미래로, 밖으로 진군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