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너, 너 같은 나...우릴 닮은 이곳
▲ 상아와 지은이 처음 만난 인천 미추홀구 주안동 마트 앞. 상아는 실내화 차림에 원피스 하나만 입은 채 쭈그리고 앉아 추위에 떨고 있는 지은을 발견한다. 상아는 지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포장마차에 데려가 계란말이와 오뎅 등을 사주며 자신을 '미쓰백'으로 부르라고 말한다.

▲ 상아가 일하는 세차장. 인천 계양구 작전동에 위치한 카센터에서 촬영했다.

▲ 상아가 지은과 도피하는 장면은 인천 연안부두의 대형 창고가 있는 골목에서 촬영했다.

과거 학대로 상처투성이인 여성
현재 학대로 위태롭게 사는 소녀
인천서 만나 서로를 끌어안게 돼

상아가 집에서 도망 나온 지은을
처음 발견하는 건 주안동 마트 앞

돈 벌기위해 악바리처럼 일하는
세차장은 작전동 카센터서 촬영

지은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으로
함께 떠나는 곳 연안여객터미널






다루기 쉽지 않은 소재인 '아동 학대'를 그린 영화 '미쓰백'은 불편하고 가슴 아픈 내용이지만 모두의 관심을 끌어내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미쓰백'은 아동 학대 실화를 베이스로 한 작품 특성상 보는 내내 분노를 억눌러야 하는 감정과 에너지를 소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학대 장면은 경각심을 일으키되 폭력의 볼거리로 여겨지지 않을 정도의 수위 조절 등으로 잘 풀어냈고, 쓸데없는 군더더기나 질질 끄는 장면도 없어 몰입감이 상당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학대받고 버림받은 뒤 보육원에서 자라다가 자신이 성폭행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고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오히려 살인미수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로 몰려 교도소를 다녀온 탓에 세상에 대한 원망과 증오로 가득한 '백상아(한지민)'는 자신의 과거를 알고 있는 형사 '장섭(이희준)'의 도움마저 거절하고 거칠게 살아간다.

게임중독 '히키코모리'인 아버지인 '김일곤(백수장)'과 그의 동거녀 '주경미(권소현)'의 폭행과 학대를 견디며 하루하루를 위태롭게 살아가고 있는 이웃집 소녀 '김지은(김시아)'을 마주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 '미쓰백'은 아동학대를 중심으로 부조리한 현실의 민낯을 드러내지만 희망의 메시지도 함께 나타낸다.



# 상아

어린시절, 술만 마시면 죽기 직전까지 자신을 두들겨 패던 엄마 손에 이끌려 모처럼 놀이공원으로 나들이를 갔던 그날.

엄마로부터 버림받은 상아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금수저' 인간쓰레기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은 판사 매부와 재벌 아버지를 둔 성폭행 가해자를 처벌하기는커녕, 제 한몸 지키기 위해 인간쓰레기를 공격했던 상아를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해 교도소에 보내고 상아는 전과자가 된다.

수많은 시련과 상처를 작고 가녀린 몸으로 오롯이 견뎌내야 했던 상아는 잔인하기 이를 데 없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위해 거칠고 날카롭게 행동함으로써, 두려움에 떨고 있는 상처투성이의 자기 자신을 감추기 위해 애쓰는 가여운 여인이다.

그렇게 세상과 장벽을 진 채, 악바리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상아는 상처로 뒤덮힌 작은 몸위에 얇고 지저분한 옷 하나만을 걸친 채 추위에 떨고 있는 소녀 지은이의 모습에서 속절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던 자신의 끔찍했던 지난날을 떠올리며 마음을 쓰기 시작한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매 순간 날 배신하는게 인생이야"라는 상아의 외침은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하지만 자신과 닮은 듯한 아이 지은을 외면할 수 없어서 무작정 지은이를 데리고 멀리 도망치려는 상아의 행동은 엄마에게서 버림받은 후 고아라는 이유로 억울하게 전과자가 되어야만 했고, 가정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내쳐진 아이는 사회에서도 결코 보호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본능적 모성애를 보여준다.



# 지은

실명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너무 힘들었을 것 같아서 '미쓰백'이라고 방패막을 사용하는 그 이름을 지은을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을 '미쓰백'이라고 부르라고 퉁명스럽게 말하지만 마음의 문까지 열지는 않는다.

자기 같은 사람은 더 밀쳐내고 싶은 것도 상아의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지은은 상아가 처음 만난 날 사주는 음식을 허겁지겁 먹고 아빠의 동거녀인 미경에게 끌려가지 않으려 상아의 손가락을 잡고, 두 번째 만남에서 하루동안 데리고 다니며 옷과 신발을 새로 사주는 상아의 투박한 온정에 월미도 놀이동산에서 "고맙습니다"라고 밝힌다.

밀쳐내고 싶어서 '미쓰백'이라 부르라고 한 상아에게 지은은 만날 때마다 '미쓰백'이라고 부르고, 학대 당한 장소 중 한 곳인 화장실에 들어와 씻는 것을 두려워하는 지은에게 상아는 자신의 학대 흉터까지 보여주면서 지은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서로가 받은 학대의 경험을 통해 동시에 느끼는 두려움과 공감 등이 '미쓰백'이라는 호칭과 함께 그동안 이미 마음에 들어와있던 상아에게 지은은 마침내 천천히 다가간다.

나이에 비해 작고 깡마른 몸, 추운 겨울에 홑겹 옷을 입은 채 가혹한 현실에서 탈출하려는 아이 '지은'역을 맡은 김시아는 6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됐다.

우수에 찬 눈빛과 길을 가다 그냥 지나쳐 버릴법한, 또는 방치할 수 있는 그런 얼굴로 실제 고통받아온 아이들의 모습을 완벽하게 소화해내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산했다.



# 장섭

상아가 어떻게 전과자가 됐고 상아와 엄마와의 관계 등 그녀의 과거를 누구보다 잘 아는 형사 장섭은 상아의 엄마를 찾으려 변사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확인한 끝에 죽은지 한달만에 발견한 시신을 상아대신 수습한다.

오랜 동정과 연민에서 시작된 장섭의 상아에 대한 사랑은 한겨울 입고 있던 패딩을 벗어주기도 하고 프로포즈까지 하지만 남자를 마음에 들일 여유도 없고 자격도 없다고 믿고 있는 상아에게 거절당한다.

학대 당한 것이 분명한 지은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집안 일은 집안에서 해결하라"며 관여하기 싫어하는 경찰이나 이웃들과 달리 상아와 지은을 묵묵히 돕는 유일한 지원자가 장섭이다.

지은의 유괴범으로 몰린 상아를 미경을 폭행하기 직전 해결한 장섭은 자신의 누나에게 지은을 맡겨 학교도 다시 다니는 정상적인 생활을 만들어준다.

"며칠만이라도 엄마해라"는 장섭의 외침은 외롭고 아프게 살아가는 상아와 지은에게 다른 세상을 열어주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응원의 메시지를 던진다.

<끝>




'미쓰백' 속 명대사


상아役 한지민

# "나는 무식해서 가르쳐줄 것도 없고 가진게 없어서 줄 것도 없어. 대신 니옆에 있을게. 지켜줄게."

- 집에서 탈출한 지은을 데려와 씻기기 위해 욕조에 물을 받은 뒤 자신의 등에 있는 학대 상처를 보여주며 상아가 하는 말. 지은이 "나도 지켜줄게요"라고 말하고 상아의 뒤에서 안긴다.


지은役 김시아

# "미쓰백은 미쓰백이 싫어요?"

- 지은이 상아가 일하는 세차장에 찾아와서 하는 말. 상아는 대꾸 없이 지은을 데리고 인천 중구 월미도 마이랜드 놀이공원에 데려간다.


장섭役 이희준

# "아니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자기 부모에게 맞고 사는 애들이 수십만이라는데 그 애들이 갈 수 있는데가 노래방보다 적다는게 말이 됩니까?"

- 지은을 보낼 아동보호센터에 전화를 건 장섭이 하는 말.

실제 노래방 숫자보다 적고, 학대 아동을 발견해서 센터 직원들이 데리고 간다고 해도 재울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거나 지옥 같은 상황에서 구해지더라도 오갈 곳이 없는 상황에 마주하게 되는 현실을 한마디로 나타냈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사진제공=인천영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