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이학박사

 

달력을 넘기다 보니 '초복'이라는 글자가 눈에 확 들어온다. "벌써?"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옛말에 '여름은 일찍 오지만 더위는 더디 온다'고 하였는데 요즘은 그 말이 무색하게 한낮의 햇볕이 8월 중순처럼 강렬하다.
이럴 때는 산록이 우거진 숲도 좋지만 인천의 큰 장점인 바닷가 마을의 정취와 내음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시기이다. 해안가 모래밭을 거닐다 보면 빨간 주황색의 방울토마토 같은 열매들과 함께 커다란 진한 분홍색의 꽃들을 올망졸망 달고 있는 해당화를 볼 수 있다.
해당화(Rosa rugosa)는 해안가에서 잘 자라는 장미과의 키 작은 나무로, 예전에는 인천 도서지역의 해안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던 식물이었다.

요즘은 해안가 모래사장의 개발로 인하여 자생지가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몇몇 섬들과 해안가에는 해당화 군락이 유지되고 있다.
해당화는 빠르면 5월 중순부터 꽃을 피워 늦여름까지도 피고 지고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해당화 피고지는~ 섬마을에~'라는 유명한 가요에도 쓰여진 것 같다. 지금 영흥도, 영종도의 해안가 도로변에는 이미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을 것이고 신도, 시도, 모도 등의 해당화 산책길은 더욱 그 풍경이 좋을 시기이다. 해당화는 바람 거칠고, 수분 적은 척박한 해안환경에 적응한 식물이라 도시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였는데 요즘 신도시의 경우 해당화를 가로수로도 많이 심어 가꾸고 있다.
해당화 꽃은 장미과 식물의 특징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어 꽃잎 가까이에 가면 어김없이 은은한 장미향을 한껏 즐길 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해당화의 꽃을 이용해 왔는데 꽃잎의 향기는 여인들이 향낭(향이 나는 물건을 넣어 몸에 차는 주머니)으로 만들어 차고 다녔다고 한다. 소위 말해 한국적인 포푸리(potpourri)로 각광받던 재료였다.
특히 고운 빛이 우러나는 해당화 꽃으로 담근 술은 향기와 빛으로 해안가 사람들이 즐겨 찾던 전통술이기도 했다. 이 술은 점차 그 향과 맛이 유명해져 나중에는 매괴주라고 불리며 사대부 들도 즐기게 되는 귀한 술이 되었다고도 한다. 조선 전기의 '화암수록(花菴隨錄)'에는 해당화를 번화함을 의미하는 식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붉은 계열의 꽃과 줄기에 많이 돋아난 가시때문인지 잡귀를 쫓아내는 의미가 있어 해안가 민가에서는 울타리로 심기도 했다.

그 유명한 함경도 원산의 '명사십리'는 해당화 군락으로 유명한 곳으로 우리 전통 민요나 시에서도 '명사십리 해당화'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겨 사용했다.
해당화 열매 또한 전통적으로 식용과 약용으로도 많이 이용하여 왔다. 여름철에 열매가 익어 과육이 부드럽게 되면 속안의 씨를 빼고 과육을 먹기도 했다.
전통 약재로서 해당화 열매가 혈액순환을 돕고 어혈을 풀어준다 했고, 당뇨에 효능이 있다고도 하여 널리 사용해 왔다.

최근의 과학적 연구결과로는 해당화 열매에 비타민 C와 함께 폴리페놀 성분도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이 두 성분은 특히 대사증후군을 억제하는 효과가 탁월하다고도 알려져 있어 현대 의약적으로도 주목을 받는 식물이다.

조만간 원산의 명사십리 해당화 꽃길을 감상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마른장마에도 꿋꿋하게 꽃을 피우고 지며 탐스러운 열매를 자랑하는 해당화 군락을 가까운 인천지역 섬들의 모래사장에서 즐겨봄도 좋을 듯하다. 나도 모르게 후욱~ 하고 밀려오는 바닷가 바람에 뒤늦은 해당화 향기를 느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