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칸 뚜껑에까지 우편물 쌓고 … 위험한 계단도 뛰었다
▲ 평택우체국 박길님(55·여) 집배원이 무더위로 인해 뜨겁게 달아오른 아스팔트 위를 달리고 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

등기 등 600여건 싣고 출발 … 성수기엔 하루 1000여건도
주택가 골목길누비며 배달 … 이동중 전화통화량도 많아
충원없이 구역만 계속 추가 … "동료에게 피해 안주려 식사"
오토바이 고장에 시간 촉박 … 복귀 후 우편물 분류 작업



2일 오전 9시 평택우체국 1층 주차장에 들어서자, 이미 한 시간 전부터 출근 한 집배원들이 자신이 맡은 우편물을 오토바이에 싣고, 하나 둘 현장으로 출동하고 있었다.

이 우체국에 소속된 78명의 집배원 중 유일한 여성 집배원인 박길님(55·여)씨는 자신의 긴 머리를 뒤로 졸라 맨 뒤 모자 속으로 쑥 집어넣었다.

이어 자신의 구역에 배당받은 택배 등의 우편물을 싣기 시작했다. 오토바이 짐칸을 다 채우고도 담지 못한 우편물은 짐칸 뚜껑 위에 쌓아 밧줄로 꽁꽁 감쌌다. 이윽고 수많은 남성 집배원들을 제치고 자신이 맡은 구역으로 빠른 속도로 오토바이를 몰기 시작했다.

박씨가 탄 오토바이는 10여분 만에 후미진 주택가 골목에 도착했다. 올해로 우체국 집배원 16년차가 된 박씨는 능숙하게 오토바이 스탠드를 내리고, 기계적으로 우편물 몇 장을 챙기더니 빠른 속도로 주소가 적힌 우편함을 눈으로 훑어 내려갔다. 우편함은 곧 박씨가 가지고 온 우편물들로 빼곡히 채워졌다.

이날 박씨가 배달해야 하는 우편물은 등기, 택배 등을 포함해 총 600여 건. 이중 110개는 직접 만나 전달해야 하는 등기 우편물이다.

박씨는 "6~8월은 비수기라서 그나마 우편물이 얼마 되지 않는다"며 "보통 많이 가져갈 때는 등기 우편과 택배가 200여 건이 넘기도 한다"고 말했다. 성수기에는 하루 평균 1000여개의 우편물을 배달하기도 한다.

하루 동안 정해진 우편물을 모두 배달해야 하는 집배원들에게 시간은 곧 금이다. 다세대주택, 빌라 등 가릴 곳 없이 골목길을 따라 쭉 늘어선 주택가를 누볐다.

기자 못지않게 전화 통화량도 상당했다. 대부분 집에 사람이 없으니 동네 인근 슈퍼에 우편물을 맡겨달라거나, 우편물 도착 시간을 묻는 내용들이었다. 박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 중일 때도 교통신호에 걸릴 때마다 울리는 전화를 받느라 분주했다.

다음으로 도착한 배달 구역은 올 3월에 들어선 새 아파트단지다. 원래는 담당 구역이 아니었던 곳이지만, 새로 충원된 인력이 없다보니 기존 팀원들이 구역을 나눠 추가로 담당하게 됐다.

박씨는 "아파트 입주자는 늘어나는데 집배원 수는 늘지 않다보니, 구역이 계속 추가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예전과 비교해 우체국에 복귀하는 시간도 한 시간 이상 늦춰졌다"고 말했다.

아파트 입구마다 '미끄러우니 조심하시오'라고 쓰인 안내문이 붙여져 있었지만, 박씨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단을 뛰어 올랐다. 오후 12시 점심시간이 돼서야 인근 식당으로 향했다. 그는 "평소 점심을 거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건강관리가 안돼서 하루라도 쉬게 되면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점심식사를 마친 박씨는 오후 배달을 위해 다시 몸을 일으켰다. 또 다른 주택가 골목에 도착한 박씨는 빠른 속도로 첫 목적지인 빌라의 입구 우편함에 우편물을 전달했다.

"아, 큰일 났네." 오후 첫 배달을 마치고 나온 박씨는 골목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자신의 오토바이를 목격했다. 주택가 골목 사이에 잠시 세워둔 오토바이가 후진하던 차량에 부딪혀 넘어진 것이다. 다행히도 차량 운전자의 도움을 받아 신속하게 오토바이를 세울 수 있었다. 박씨는 "오토바이가 넘어지는 일은 종종 있다"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했다.

그것도 잠시, 오토바이를 세우는데 필요한 고정 장치가 고장이 나버렸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박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10분여 정도 떨어져 있는 카센터를 찾아가 수리를 받아야 했다. 오토바이 스탠드는 오토바이를 수시로 타고 내려야 하는 집배원에게 필수 장치다. 박씨는 30여분 뒤에나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남은 우편물 배달을 위해 더 속도를 내야 했다.

박씨는 "안 그래도 항상 시간에 쫓기는 마음이 직업병처럼 자리 잡았는데, 할 일이 태산같을 때 이런 일이 생기면 정말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3시간 동안 오후 배달을 마치고, 우체국에 복귀한 박씨를 기다리는 건 다음 날 배달 예정인 우편물의 분류 작업이었다.

박씨는 동료가 타준 커피를 급히 들고는 의자에 앉아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 시작 한 시간이 지나자 박씨는 책상 위에 쌓여있는 우편물과 택배더미 위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두 시간 후 업무를 마친 박씨는 "요즘은 계약직 집배원도 없는데 일이 힘들다고 소문이 난 건지 공채를 진행해도 지원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우체국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충원도 쉽지 않는데, 사람 모집을 해도 오질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라고 하소연했다.

/이성철 기자 slee0210@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