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락에 이슬 맺히는 날
▲ 전구슬, 전이슬 형제가 '이슬옥'을 주제로 퓨전 국악가요를 만들었다. 사진은 앨범 재킷.
▲ 전구슬, 전이슬 형제가 '이슬옥'을 주제로 퓨전 국악가요를 만들었다. 사진은 앨범 재킷.

 

"우연히 2년 전에 일본식 건물을 사들이게 됐고 그저 작은 식당을 운영하려 했는데, 리모델링하면서 이 건물이 1910년 8월1일 신축했다는 건축물대장과 일본 신문을 발견하고 '110년 전에 우리나라가 일본에 의해 강제 합병된 경술국치일인 1910년 8월29일보다 4주 전에 지어진 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식당이름을 '경술쿡(cook)치'라고 하려는데 주위에서 '너 그러면 오픈 하루 만에 문닫을 수 있다'며 '가장 너다운 이름을 지어라'해서 '이슬식당'으로 하려다 1910년대식인 '이슬옥'으로 정했어요. 제 형 이름이 '구슬'이기도 하고요."

인천 중구 경동의 싸리재길에 있는 바지락과 꼬막 음식 전문점 '이슬옥'의 전이슬 대표는 "이 집에 덮여있던 구조물들을 떼어내고 내부를 철거하자 일제 강점기부터 1910년대, 1930년대, 1950년대 옛 신문이 무더기로 나왔어요. 역사가 있는 집이라는걸 알게 됐고 '이슬옥'에 스토리가 있는 역사를 담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라고 밝혔다.

전 대표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를 거쳐 호주 시드니에서 건설 사업을 좀더 효율적이면서 더 큰 가치를 만들어내는 '건설사업관리'를 공부해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현지 건축회사에서 일하다 아내의 연고지인 인천에 와서 '이슬옥'을 만났다.

"리모델링하면서 드러난 대들보나 나무기둥은 그대로 이용했어요. 목조가옥이었던 만큼 나무의 뒤틀림을 막고자 불로 그을린 흔적도 남겼지요. 1910년 당시의 느낌으로 내부를 꾸몄고 조명도 그 때 사용했던 조명을 달아 분위기를 살렸지요."

전이슬 대표는 어릴 때 '가족 사물놀이패'로 활동했다. 주병진쇼, 인생극장 등 TV에도 출연했고 프로야구장에서 공연도 했다. 형인 전구슬씨는 경남의 초등학교 교사인데 국악을 베이스로 하는 동요와 교가 등을 만들고 있다.

"형과 함께 '이슬옥'을 주제로 퓨전 국악가요를 만들었어요. 형이 작사, 작곡을 하고 저는 보컬에 참여했지요. '이슬옥 이야기'는 '이슬옥 1910', '이슬옥 1945', '이슬옥 2019' 등 3가지 버전이에요. 1910년 경술국치의 슬픈역사와 1945년 독립의 기쁨,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애틋한 마음과 이곳의 역사와 문화를 알고 사랑하자는 뜻으로 개항로, 용동큰우물, 축항사, 애관극장, 협률사, 신포동, 싸리재, 배다리 등을 가사에 담았어요. 국악장단인 굿거리, 자진모리, 중중모리를 기반으로 하면서 국악기는 최소한으로 줄였지요. 젊은 손님들이 좋아하고 쉽게 따라 부르더라고요."

1, 2층에 모두 12개의 식탁이 있고 걸어서 3~4분 거리인 애관극장 앞에 공용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032-777-8138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짭조름하니 칼칼한 인천 앞바다의 맛 … '그 집'의 추천메뉴]

▲ 얼큰돼지바지락탕
▲ 얼큰돼지바지락탕
▲ 맑은바지락탕
▲ 맑은바지락탕

●얼큰돼지바지락탕·맑은바지락탕
전이슬 대표는 '이슬옥'을 열면서 인천의 특산물을 먹을 수 있는 밥집 겸 술집으로 알려지길 바란다. 그래서 인천 앞바다에서 나는 재료들로 음식을 만든다. 바지락은 이집의 역사성을 살리기 위한 시그니처 메뉴다. 1910년대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었던 해산물이 바지락이었고 영흥도와 선재도가 바지락 주산지라는 사실도 알게 됐다.
돼지고기와 바지락이 만나 묘한 조합을 이루는 '얼큰돼지바지락탕'은 바지락이 듬뿍 들어있고 잡내를 깔끔하게 제거한 돼지고기도 가득 넣어 얼큰 칼칼한 맛이 술안주로도 좋고 밥과 함께 먹어도 그만이다. '맑은바지락탕'은 바지락을 삶아낸 시원한 육수를 여름철에는 차갑게 내고 날씨가 쌀쌀해지면 따뜻하게 나온다.
 

▲ 바꼬락파전
▲ 바꼬락파전
▲ 후라이드꼬막
▲ 후라이드꼬막

 

●바꼬락파전·후라이드꼬막
전이슬 대표가 10년 넘게 외국 생활을 하면서 외국 친구들과 함께 지내면서 다양한 문화와 음식을 접하게 되고 저녁모임을 갖게 되면 서로 자기나라의 음식을 만들어 나눠 먹다보니 저절로 요리를 즐기게 되면서 익힌 '생활요리'를 접목해 개발한 메뉴.
'바꼬락파전'은 바지락과 꼬막의 '반반파전'으로 두 재료를 한입에 맛볼 수 있다. '바지락파전'과 '꼬막파전'도 있다.
'후라이드 꼬막'은 전 대표가 야심차게 준비한 메뉴로 치킨보다 훨씬 부드럽고 한입에 먹기 좋은 크기인 꼬막을 튀김옷을 입혀 노릇노릇 튀겨낸다.

▲ 바지락비빔밥
▲ 바지락비빔밥
▲ 꼬막비빔밥
▲ 꼬막비빔밥
▲ 바지락라면
▲ 바지락라면

 

●바지락비빔밥·꼬막비빔밥·바지락라면
유통이 발달하지 못했던 100년 전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지역에서 나는 재료의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바지락을 주재료로 삼았고 꼬막은 전이슬 대표가 좋아하고 바지락과 비슷하기 때문에 선택한 재료.
바지락하면 칼국수가 떠오르지만 달고 짭짜름하게 양념된 쫄깃한 식감의 바지락 또는 꼬막과 향긋한 쪽파가 어울려 밥과 비비면 누구나 좋아하는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모든 라면에 해물이 들어가면 맛이 훨씬 올라가는 이치를 살린 '바지락라면'은 아무리 배가 불러도 꼭 먹게 되는 마력을 갖고 있다.

 

▲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의 매니저인 김예지씨(왼쪽)와 강수연씨가 '이슬옥'을 찾아 맛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매니저 뒤에 있는 벽면 속에는 110년전 대나무가 그대로 남아있다.
▲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의 매니저인 김예지씨(왼쪽)와 강수연씨가 '이슬옥'을 찾아 맛과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두 매니저 뒤에 있는 벽면 속에는 110년전 대나무가 그대로 남아있다.

 

[김예지·강수연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 매니저들이 찾은 '이슬옥']
"100년 넘은 이 건물은 역사를 담고 … 50년 된 수도가압장은 창작 빚는 곳으로"

"중·대연습실이 있는 건물과 다목적실과 대본 리딩룸이 있는 건물 사이에 있는 뒷마당이 지난해까지 잡초만 무성했는데 올해 들어 제초작업과 함께 바닥을 다지고 콘크리트를 깔아 연습공간을 만들었더니 활용도가 확 오르더라고요. 실제로 최근에 '낡은 사람'이란 연극을 학산소극장 무대에 올린 극단 아토가 이 곳에서 연습을 한 뒤 무사히 공연을 마친 것처럼 작지만 의미있는 변화를 이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조명도 설치하고 바닥에 데크를 깔아 야외 무대로 꾸며 창작을 위한 연습공간은 물론 버스킹 등 공연도 가질 계획이에요."

인천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의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김예지씨와 강수연씨가 인천 중구 경동에 있는 바지락과 꼬막 요리 전문점 '이슬옥'을 찾았다.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이 1970년에 지어진 수도가압펌프장을 개조해서 예술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한지 4년차에 접어들고 있어요. 수도 가압펌프는 가동을 중단했지만 인천의 공연예술인들의 창작펌프는 계속 가동하고 있어요."

한국무용을 전공한 김예지씨와 문화기획이 전문인 강수연씨는 이곳 연습공간이 개관할 때부터 인연을 맺은 뒤 수명 다한 전구나 수도꼭지, 문고리 교체 등은 직접 해내며 구석구석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애착을 갖고 있다.

"개관 초부터 고민하던 건물 외벽과 담장도 그래피티 등을 활용해서 변화를 시도할 계획이에요. 저희 힘 닿는 곳부터 차근차근 변화와 발전을 만들어가려고 해요."

두 매니저의 꾸준한 시설관리와 참신한 기획이 알려지면서 연습공간에 대한 입소문이 났고 찾는 사람도 장르나 대상의 범위가 넓어지고 그만큼 대관율도 해를 거듭할수록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곳에서 연습해본 사람들은 만족도가 높아 재방문율이 올라가고 있어요. 그래서 '연습공간을 안 온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에요. 4년간 계속 이용해서 가족같은 단체도 있을 정도로 전문적인 연습공간을 찾는 예술인들이 꾸준히 방문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인천연극제 시즌이면 참가극단 중 절반가량이 이곳에서 연습하고 있어요. 저희는 종종 공연장을 찾아 모니터링을 하는데 그들의 연습작업이 공연으로 거듭나는 것을 보고 감탄하곤 해요. 이와 함께 자체 기획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예술인을 위한 프로그램과 일반 시민대상 교육 프로그램도 있어요. 우리 연습공간 모토가 '지속적인 프로젝트, 지속적인 공연예술'이에요."

예술동호인과 직장인들이 주말 대관을 하는 연습공간 특성에 따라 두 매니저는 매주 토요일 한명씩 교대로 출근하며 공연예술인들을 맞고 있다.

"토요일은 종일 예약이 있어요. 2주에 한번씩 출근해야 하지만 이곳에서 연습하면서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가거나 무대에 올리는 분들을 보면 주말근무의 피곤함이나 불편함이 싹 가실정도로 보람도 느끼고 뿌듯해요. 그런데 주말 낮에 예약하고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으면 힘이 빠져버리죠. 평일도 마찬가지로 연습 일정이 바뀌거나 취소하게 되면 미리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어요."

100년이 넘은 일본식 건물을 개조한 '이슬옥'이나 50년된 수도가압장을 창작의 공간으로 꾸민 공연예술연습공간이 '남겨진 것을 맛과 예술로 꽃피우는 공간'으로 변신한 공통점을 공감한 두 매니저는 외친다. "너무 맛있고 멋있어요. 비오는 날 저녁에 오면 운치와 풍경을 맛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글·사진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