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수 논설실장

인천 내항에 아라온 호가 정박했다. 붉은색 선체에 'Araon' 선명(船名)이 뚜렷하다. 장마 전 30도를 오르는 여름 날씨에 남극 항해의 차갑고 거센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거친 항해에 지쳤을 아라온이 푸근한 인천 바다에서 휴식을 취했다. 인천항은 아라온의 모항이다. 따뜻한 어머니의 품이다.
올해 아라온 호는 취항 10년을 맞이했다. 남극 처녀출항에 나선 지 10년을 앞뒀다. 지난해 10월 말 인천항을 떠나 167일 동안 남극 장보고기지 주변에서 하계 연구 조사활동 지원을 완수하고 돌아왔다. 아라온은 지난 1월, 남극 기지 인근에 고립된 24명의 중국 기지건설단원들을 구조하기도 했다. 단원들을 철수시키기 위해 나섰던 중국 쇄빙선 쉐룽(雪龍)호가 빙산과 충돌해 킹조지섬으로 급히 회항했기 때문이다. 남극 활주로의 해빙으로 비행기마저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남극 로스해에서 연구활동을 수행 중이던 아라온이 나설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아라온은 오는 12일 북극 베링해, 척치해, 동시베리아해로 기후·기상변화와 환경자원 탐사에 또 나선다. 그러나 쇄빙선 1척으로 남·북극을 오가야 하기 때문에 극지 해양 연구의 효율이 반감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제2쇄빙선이 필요한 이유다. 극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추가 쇄빙선의 건조가 시급하다.

기후변화 등은 인류 공동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극지 연구에 대한 세계 각국의 각축도 치열하다. 고도 기능을 갖춘 쇄빙선을 앞다투어 도입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난해 '차세대 쇄빙 연구사업'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남·북극을 동시에 연구할 쇄빙선 시대를 열어야 한다. 아라온의 쇄빙 능력은 1m 이하 얼음이다. 쇄빙능력을 1.5m로 키운 제2쇄빙선이 건조되면 남극 해역 60곳의 90% 정도를 탐사할 수 있고, 북극 해역 108곳의 63.9%를 연구 해역으로 넓힐 수 있다고 한다. 중국, 독일 등이 1.5m급 쇄빙선을 건조 중이다. 호주는 1.6m이상급을 내년 도입한다. 일본, 영국 등도 추가 쇄빙선을 갖게 된다.

최근 극지연구소를 '한국극지연구원'으로 독립시켜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는 극지활동진흥법이 발의됐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2소위에 계류 중이다. 해수부의 오판으로 극지연구소 독립조항이 빠져 법사위에서 다시 상임위로 내려가야 할 '거꾸로 법안'이 되고 말았다. 부산에서 '취항 10주년 행사'를 하고 인천 모항에 정박한 아라온 호를 보니 씁쓸하다. 인천 극지연구의 정체성이 모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