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금수저는 '곽식자' 걱정했으면

전임 대통령은 임기 내내 국민과 소통 부재가 문제였다. 성호 선생의 견해를 끌어 오자면 이것은 대통령을 보좌하는 관리들의 문제다. 성호 선생은 국가 통치의 잘잘못은 오직 군주의 마음에 달려 있고 군주가 마음을 바로잡게 하는 게 학문이며, 왕에게 학문을 알려주는 것이 경연관(經筵官)의 역할이라고 했다.

경연의 목적은 왕에게 경사를 가르쳐 유교 이상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하지만 왕에 따라 경연 본래의 임무가 퇴색되기도 하였다. 17세기에 붕당정치(朋黨政治)가 펼쳐지면서다. 경연은 왕이 산림(山林) 유현(儒賢)을 불러 그들의 학덕과 정치 이론을 듣고 국정에 반영하는 자리였지만, 탕평책(蕩平策)이 추진된 영조·정조 연간에는 거꾸로 되었다. 왕이 신하 말을 듣지 않고 경연을 유교 경전에 근거하여 자신의 주장을 합리화하는 자리로 만들었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다. 왕을 위한 탕평이었지 백성을 위한 탕평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탕평책은 본래 <서경>(書經) 홍범(洪範) 제14장 '탕탕평평'(蕩蕩平平)에서 나왔다.
치우침과 무리 지음이 없으면 無偏無黨 왕도는 탕탕하다 王道蕩蕩
무리 지음과 치우침이 없으면 無黨無偏 왕도는 평평하다 王道平平

탕평책은 이렇듯 신하들이 무리를 짓지 않고 당쟁을 하지 않으니 왕으로서는 탕탕평평이었다. 이는 견제 세력이 없다는 말이다. 신하와 왕이, 신하와 신하들이 서로 견제하지 않으면 권력은 부패할 수밖에 없다. 담헌 홍대용 선생은 그래서 "폐하! 탕평책 백 년이면 나라가 망합니다"라고 일갈하였다. 담헌 선생 지적대로 정조 사후, 탕평책은 세도정치라는 괴물로 변하였고 조선을 망국으로 끌고 갔다.

각설하고, 다시 경연으로 돌아 와, 처음에는 경전 중심이었다가 차츰 성리서와 사서가 추가되는 경향을 보였다. 강의는 한 사람이 교재 원문을 음독·번역·설명하고 나면 왕이 질문하고 다른 참석자들이 보충 설명을 하는 식이었다. 주로 홍문관에서 근무하는 참상관이 강의를 맡았으나 필요한 경우에는 그 분야 전문가를 불러 강의를 맡기기도 하였다.

때론 강의 내용과 연관하여 자연스럽게 정치 현안이 논의되었다. 그렇기에 강의가 끝난 뒤 정치 문제도 협의하였다. 대간(臺諫)이 경연이 끝난 뒤에 왕 앞에서 시사성이 있는 문제를 제기하면 왕과 대신이 논의하여 처리도 하였다. 요즈음으로 치면 전제왕권을 반관반민(半官半民)·비영리·자원봉사 등 조직이 수행하는 공공활동인 거버넌스(governance) 체제로 바꾸자는 의미다.

따라서 경연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였다. 그렇기에 왕에게 시강을 하는 경연관들이 수행하는 역할이 매우 중대하였다. 당시 선생은 이 경연 기능에 문제가 있다고 보았다. 잠시 <곽우록>으로 들어가 선생의 육성을 들어보자.

"지금 강연하는 자들이 모두 사과(詞科, '사부(詞賦)'로 선발한 과거란 뜻으로 문과를 달리 이르는 말) 출신이기는 하지만 경서 뜻을 연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연신(筵臣, 경연에 관계하던 벼슬아치)으로 선발하는 데에도 다만 문벌이 빛나고 번성함을 택해 인원을 보충하고 승진하는 발판으로 할 뿐이고 그 능한가 않은가는 애당초 생각지도 않습니다."

선생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당시 경연관 선발들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경서를 연구하지 않는 경연관은 경연관이 아니다. 더욱이 문벌로 경연관을 선발하니 임금에게 가르침을 주는 경연관 본연의 임무를 다할 수 없음은 당연한 결과였다. 유수원 선생도 <우서> 2, '문벌의 폐해를 논함'(論門閥之弊)에서 이를 강력히 규탄하고 있다. 하지만 문벌의 폐단은 지금까지도 장구히 이어져 온다. 이 글을 쓰는 이 시절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그리고 흙수저라는 카르텔의 최상단에 있는 금수저가 바로 저 문벌, 혹은 학벌이다. 문벌과 금수저라는 '그들만의 리그'는 지금도 연면하다는 사실에 몸서리쳐진다.

마지막으로 선생이 만든 '삼두회'(三豆會)로 갈음한다. 선생은 검소함을 깨우치려 종족들의 모임인 삼두회를 만들었다. 삼두는 콩을 갈아 끓인 죽 한 그릇, 황권저(콩나물, 파, 붉은 고추, 마늘을 섞고 소금물을 부어 만든 콩나물 김치가 아닌가 한다) 한 접시, 청국장 한 그릇을 가리킨다. 곽식자 모임인 삼두회를 통하여 음식에 사치를 부리는 육식자 탐관오리들을 은연중 비판한 것이다. 모쪼록 육식자들이 진정 곽식자들을 걱정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다음 회부터는 19세기 실학자 혜강(惠岡) 최한기(崔漢綺,1803~1877)를 연재한다.)

 

▲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

 

 

 

 

 

 

 

 

 

 

/휴헌(休軒) 간호윤(簡鎬允·문학박사)은 인하대학교와 서울교육대학교에서 강의하며 고전을 읽고 글을 쓰는 고전독작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