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의 날 특집-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진실]

경기도 내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유족들의 명예회복과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이 절실하다. 수십 년간 진실규명 운동에 앞장섰던 유족들은 막연한 기다림 속에서 희망의 서서히 끈을 놓고 있다.
도내에서 유족회를 처음 결성한 지역은 고양시다. 고양시민회 등 금정굴 사건을 자체 조사한 시민단체와 유족들은 1993년 '유족회'를 구성했다. 이후 여주, 광주, 평택, 용인, 포천, 파주, 김포, 고양, 양평, 포천 10곳으로 늘었다.

각 지역 유족들은 정부의 외면에도 민간인 피해조사, 증언 확보 등 진실규명을 위한 활동을 펼쳤다. 유족회를 처음 결성한 1993년에는 '금정굴사건(한국전쟁 민간인 학살사건) 진상조사 및 특별법 제정에 관한 청원'을 대통령에게 전달했고, 같은해 위령제를 여는 등 아픈 기억을 되새겼다.
유족들은 또 시민들과 함께 2014년 6월19~10월30일 여주, 양평, 김포, 고양 등을 순례하면서 진실을 파헤치기도 했다. 희생자 유족을 찾거나, 학살 현장을 재조사하는 일을 반복했다.
정부 기관, 국회를 일일이 찾아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고, 농성까지 불사했다. 2016년에는 '경기도유족회'를 결성해 힘을 모았다.

하지만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현재 유족회 활동을 벌이는 곳은 10곳 중 여주, 양평, 김포, 고양, 평택 등 5곳 밖에 없다.또 유족 대부분이 70대 이상 고령인 데다, 특별법 제정도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특별법안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안' 등 7건이다. 이중 2017년 더불어민주당 소병훈(경기 광주갑) 의원이 내놓은 법안이 대표적인데 2010년 종료된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위원회를 재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민경철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경기도유족회장은 "희망과 좌절이 반복되는 굴레에 갇혀 결국 희망을 버리는 유족들이 많다"며 "진실규명만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지금은 가망이 없어 보인다"고 안타까워했다.

학계와 유족들은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가 다시 이뤄져도 진실파악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진실 규명에 필요한 목격자들의 출생연도가 대부분 30~40년생으로 이들이 기억을 점점 잃어가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유족과 시민단체는 정부 등이 나서 이들의 증언을 채록할 수 있는 지원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경기도 등 도내 일부 지자체가 '한국전쟁 희생자 위령제 사업 지원 조례'를 제정했지만, 정작 행사 등 일회성 사업에만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올해 처음으로 여주시만 유일하게 증언채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충남 아산시와, 전북 전주시도 정부가 나서지 않자, 자체적으로 진실규명을 위해 나섰다. 이들 지자체는 올해 민간인 희생자 유해발굴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인수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여주시유족회 사무국장은 "긴 세월을 기다리는 유족들을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유족 대부분이 고령인 만큼, 지방정부나 시민단체들의 도움도 절실하다"고 했다.

/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