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정 경기본사 문화부장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은 기억과 추억이 공존하는 달이다. 잊혀져서는 안될 사람들을 기억해야 하는 달이고, 잊혀지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아픈 추억을 달래는 달이다. 사자(死者)가 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억해야 하고, 생존해 있는 참전유공자나 유족들의 아픔과 슬픔을 위로해야 한다.
국가보훈처는 6월 한 달을 '추모의 기간(6월1일~10일)', '감사의 기간(6월11일~20일)', '화합과 단결의 기간(6월21일~30일)'으로 나눠 호국·보훈행사를 추진한다. 추모의 기간에는 6월6일 현충일 추념식을 진행했다. 감사의 기간에는 국가유공자와 유족을 위로·격려하며 보훈 관련 문화행사를 지원했다. 화합과 단결의 기간에는 6월25일, 6·25 기념식과 6월29일 제2연평해전 기념행사 등이 거행된다.

지방자치단체와 종교계·문화계, 학교 등에서도 시기에 맞춰 다양한 호국보훈의 달 행사가 이어진다. 문화계에서는 호국영령을 위로하는 레퀴엠(Requiem)이 무대 위에 올려진다. '죽은 이를 위한 미사곡'인 레퀴엠이 다양한 버전으로 공연되며 선열들과 유족들을 위로한다. 학교에서는 독립기념관, 전쟁기념관 등으로의 현장학습이 실시되고 포스터, 표어 등을 만들며 호국보훈의 의미를 새긴다.
이같은 호국보훈의 달 행사는 올해도 어김없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사회 외적인 모습만 보면 호국보훈의 의미가 마땅한 특성에 맞게 적절함을 찾아가는 듯하다. 하지만 내적 문화는 아직 성숙하지 못하다. 다수의 사람들에게 법정공휴일인 현충일은 추념일이기보다 여전히 쉬는 날, 노는 날이다. 현충일을 앞두고 여행사에서는 공휴일 여행족을 잡기 위한 마케팅이 뜨겁게 펼쳐지고, 뉴스에서는 나들이 인파로 도로 곳곳이 정체를 빚는다는 소식이 매년 반복된다.

쉬지 말고, 놀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현충일만큼은 개인의 자유를 공동체의 윤리 측면에서 누려보자는 것이다. 화성 뱃놀이축제와 부천 장미축제는 다른 날 충분히 즐길 수 있으니 현충일은 추념의 행선지로 발길을 향하는 것이 지금 우리를 있게 한 선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 아닐까 싶다.
나라를 지키는 이들에 대한 생각도 너무 가볍다. 한 인터넷 카페에는 군인에 대한 의식 있는 글이 올라와 이목을 끌었다. 유명 해외 배송대행 업체가 호국보훈의 달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자사 사이트에 경찰, 소방관 배송비 무료라는 배너 광고를 게재했다. 이를 두고 한 네티즌이 문제를 제기했다. 호국보훈의 달 1순위 대상은 군인이 아니냐는 것이다. 생일 축하 공지에 주인공이 빠진 느낌이라며 상식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호국보훈의 의미를 제대로 새기고 싶은 국민 한 명이 나서 자본주의의 민낯에 대고 호국보훈에 대한 몰상식을 지적한 것이다.

압축성장을 통해 한국 사회는 어느 정도 살만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 내면에 가치가 부재하다는 석학들의 말이 호국보훈의 달에 유독 귀에 들어온다.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며 자기성찰과 반성의 역할을 수행하는 공간 전체를 문화로 볼 때 우리 사회 내면 문화는 아직 성숙하지 못하다. 외적 문화만큼 내적 문화가 성숙하질 못하니 호국보훈 의식 함양이니 안보의식 고취니 하는 것들이 구호에 그치는 것이다. 내외적 문화의 튼튼함이 갖춰질 때 호국보훈에 대한 국민 의식도 강화될 것이다.

국가유공자나 유족들은 어쩌면 자신들에 대한 사회의 홀대보다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더 크게 느낄는지도 모른다. 잊혀지는 것은 서럽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들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진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1년에 한 번 만이라도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 애썼으면 좋겠다. 6·25 참전군인은 대략 90여만명, 제2연평해전에는 6인의 용사가 있다. 그 외에도 국가를 보호하고 지킨 많은 희생자와 가족들이 있다. 그들의 공훈에 보답하는 것이 바로 호국보훈이다.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당신을 기억합니다." 지난 현충일 추념식의 슬로건이었다. 국가보훈처 공모로 선정된 이 슬로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는지 모르겠지만 참 잘 지어진 슬로건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내적 문화가 성숙해진 국민들에 의해 기억되고 추념·기념되는 호국보훈의 달이 돌아오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