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의 역사를 지닌 한국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가 기로에 섰다. 그린벨트는 산업화와 도시화가 한창이던 1970년대 무분별한 도시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됐다. 이후 30여년 가까이 함부로 훼손할 수 없는 성역으로 지켜져 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서는 주택난, 대규모 국제행사 개최 등 그때 그때의 손쉬운 정책수단으로 해제가 거듭돼 왔다. 도시환경과 녹지보전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도 없이 근시안적인 해제 명분만 찾기 급급했다.

남아 있는 그린벨트에 대한 정책 기조도 50년 전의 규제 일변도를 답습하고 있다. 그 결과 도시환경 보전과 경관 관리라는 본래의 목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희미해진 상태다.
장기적인 비전과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그린벨트에 대한 재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1971년 도입된 한국 그린벨트 제도는 영국을 모델로 삼았다. 그러나 50년이 흐른 뒤 양쪽의 상황은 판이하다. 국내 그린벨트 면적은 개발에 대한 압력으로 2000년 5386㎢에서 3854㎢(2016년 말 기준)로 28.4%가 감소했다. 반면 영국은 1만6347㎢(2017년 기준)로 20년 전(1만6523㎢)과 큰 차이가 없다.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그린벨트는 정책수단으로 이용됐다. 국민임대주택, 보금자리주택 등 이름만 바뀐 경기부양책으로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 모두 해제에 앞장섰다. 박근혜 정부 역시 30만㎡ 이하 해제 권한을 지자체에 위임하고 민간 개발 비율을 늘리는 등의 완화책을 쏟아냈다.

그린벨트 조정 방향이 담긴 2020년 광역도시계획을 놓고 보면 인천에 부여된 9.096㎢의 해제총량 중 1.13㎢만 남아 있다. 계양테크노밸리와 같은 국책사업이 아니면 더 이상 큰 개발사업은 불가능한 실정이다.
그린벨트를 꼭 손댈 수 없는 성역으로 지켜야 한다는 주장이 아니다. 장기적인 비전도, 원칙도 없이 땜질식으로 풀어가면 우리 도시환경의 미래가 없다는 걱정이다. 이와 함께 그린벨트 구역에 대한 지원과 관리도 선진화돼야 할 것이다. 파리 근교에 지정된 삼림과 공원, 농지 등의 그린벨트를 시민 여가와 도시근교 농업의 장으로 활용하는 프랑스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커 보인다.